↑ [사진 = 길리어드사] |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을 대표해 미국 길리어드사와 1조원이 넘는 대규모 구매 계약을 직전에 두고 WHO의 충격적인 발표가 나오면서 계약을 강행해야 하는지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더구나 10월 들어 유럽 주요국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중증환자 증가에 대비한 치료제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태다.
◆유럽의약품안전청, WHO에 "임상시험 데이터 넘겨달라"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 산하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은 WHO를 상대로 렘데시비르 국제 임상과 관련한 완전한 데이터를 넘겨줄 것을 시급히 요청했다.
WHO는 최근 입원 환자 1만1266명을 상대로 진행하는 글로벌 '연대 실험'에서 렘데시비르가 환자의 입원 기간을 줄이거나 사망률을 낮추지 못했다고 평가해 논란을 일으켰다. 연구 결과 다수의 후보군 중에서 코로나19 입원 환자의 생존에 크게 영향을 주는 코로나19 치료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반면 길리어드는 렘데시비르가 회복 기간을 5일 단축해줬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5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한 임상 시험에서는 렘데시비르를 처방받은 실험군의 사망률이 위약을 투약받은 대조군보다 43%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렘데시비르는 같은 달 코로나19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으며, 이후 중증환자 치료에 사용됐다.
WHO를 상대로 완전한 데이터 공유를 요청한 EMA의 입장은 길리어드의 주장과 180도 다른 방향을 제시한 WHO의 글로벌 연대 실험 데이터에 해석 상 오류가 있는지 여부를 꼼꼼하게 살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WHO 분석 맞다면 美길리어드와 거액 구매계약 취소 불가피
만약 WHO의 분석이 맞다면 EMA는 최소 10억 유로(1조3400억원) 이상 렘데시비르 구매 계약을 길리어드와 체결하려던 당초 계획을 접어야 할 판이다
EU는 지난주 27개 회원국과 영국을 포함한 10개의 파트너 국가들에서 총 50만명의 중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규모의 렘데시비르를 향후 6개월간 확보하겠다며 이 같은 대규모 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로이터통신이 글로벌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를 분석한 보도를 보면 직전 24시간 동안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41만3121명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시작 후 처음으로 하루 40만명을 돌파했다. 또 지난 한 주 동안 유럽에서만 하루 평균 14만명의 확진자가 쏟아져나와 유럽발 대유행 공포가 현실화했다.
유럽 회원국들 사이에서 기하급수적으로 가을철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EMA는 중증 환자 대응을 위한 치료제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길리어드의 주장과 중립적 위치에 있는 WHO의 반대 견해 사이에서 EMA가 내릴 선택은 단순히 길리어드의 주가 전망표 문제가 아닌, 유럽 전역의 중증환자 대응역량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체코의 경우 향후 2주 사이에 5000여명의 신규 환자 수요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 대형 전시·박람회 공간 등을 임시 병원으로 전환하는 등 의료시스템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 내 코로나19 대유행은 지난 15∼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도 확인됐다. 원래는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다 모여야 하지만,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참석하지 못했다.
회의 첫날인 15일에는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을 알게 돼 정상회의 시작 직후 갑작스럽게 회의장을 떠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어 16일에는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도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것으로 나타나 회의 중간에 나와 자가격리를 위해 자국으로 돌아갔다
한편 길리어드사는 WHO의 평가가 결코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불완전한 데이터라고 일축했다. 효과성이 입증된 다른 임상시험 데이터의 경우 다중의 무작위·위약 대조 임상 시험 포함됐고 엄격한 과학적 토론을 거친 반면 WHO의 평가는 이 조건들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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