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인 10일 0시 개최했던 열병식 영상을 19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7시 공개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주민들에게 재난을 이겨내자고 호소할 땐 눈물을 흘렸고, 미국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등장할 땐 당당한 미소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조선중앙TV는 이날 수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2시간 16분 분량의 열병식 영상을 방영하며 "영광과 자긍 넘치는 위대한 밤, 10월 명절의 밤"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국방력을 안팎에 과시하는 열병식을 해가 뜨지 않은 심야에 개최한 건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이번 열병식은 이런 의아함을 불식시키려는 듯 장병들의 자로 잰 듯한 행진, 불꽃놀이, 발광다이오드(LED)가 장착된 전투기 등 어둠 속에서 빛을 활용한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 채웠습니다.
카메라는 먼저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평양 시내를 훑은 뒤 가지런히 도열한 75개의 열병종대, 국무위원회연주단·조선인민군군악단 등 군악대를 비췄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극적으로 등장을 했습니다.
시계탑의 시침과 분침이 '10일 0시'를 가리킨 순간, 형형색색의 불꽃놀이가 수놓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깔끔한 회색 정장과 넥타이 차림의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어린이들이 꽃다발을 안겨주자 환하게 웃으며 이를 현송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에게 넘겼습니다.
김 위원장 양옆에는 열병식 성격에 맞게 박정천 군 총참모장,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섰습니다.
주석단에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비롯해 박봉주·김재룡·최휘·김영철·박태덕·김덕훈·최부일·김수길·태형철·오수용·김형준·허철만·조용원 등이 자리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포착됐으나, 김 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 여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18년 정권수립 70주년(9·9절) 열병식 때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등 각국 외빈들이 참석했던 것과 달리 외부 인사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장병들의 만세 삼창과 예포 21발 발사를 지켜본 뒤 리일환 당 부위원장의 사회로 다시 카메라 앞에 등장했습니다.
흰 종이에 타이핑된 연설문을 꺼내든 그는 김일성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과 장병들을 내려다보며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수도당원사단의 자연재해 복구 노력을 언급할 땐 "미안하다"며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고, 국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점을 강조할 땐 "고맙다"며 울먹였습니다.
그러나 "전쟁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겠다"고 선언하는 대목에선 목소리를 가다듬고 결연하게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줘 읽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총 28분 분량의 연설을 마치자 박정천 총참모장과 리병철 부위원장은 지휘 차량을 타고 장병들을 점검했습니다.
이들이 부대들을 하나하나 돌며 "10월 명절을 축하합니다"라고 외치자 장병들은 우렁차게 "만세"를 외치며 화답했습니다.
열병식은 '하이라이트'인 전략무기들이 공개되며 절정으로 향했습니다.
북한은 초대형 방사포와 대구경 조종 방사포,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4형' 등 그동안 준비했던 전술·전략무기를 총망라해 선보였습니다.
특히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열병식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는데, 11축 22륜(바퀴 22개)의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ICBM이 등장하자 시민들은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군악대 지휘자가 2018년 평창올림픽 때 남한을 방문해 삼지연관현악단을 지휘한 장룡식으로 바뀌면서 북한이 이 순서에 방점을 찍었음을 드러냈습니다.
김 위원장은 단상에서 이를 내려다보며 간부들과 마주 보고 웃었고,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날 열병식에서는 김 위원장과 간부들, 장병들은 물론 주민들도 전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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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김 위원장이 지난 8월 정치국회의에서 이번 열병식을 "특색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한 만큼, 밤이라는 시간대를 활용해 불꽃놀이가 열리는 미국 독립기념일이나 남한의 평창동계올림픽 등에서 영감을 얻은 행사를 펼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