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이 맥주를 가지고 3~5일만에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공개해 시장 관심을 끌었다. '홈 카페' 열풍을 이끌어낸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처럼 고급 양주도 쉽고 빠르게 만들어 마실 수 있게 한다는 게 회사의 목표다. '장인 정신'으로 빚어낸 주정을 오랜 시간 배럴(나무·금속으로 된 대형 통)에서 숙성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위스키 업계에서는 이를 별로 반기지 않지만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 비스포큰의 기술로 양주를 만드는 과정(왼쪽 아래). 간편 제조술이지만 최근에는 대회에서 상을 따내며 프리미엄 숙성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진 제공 = 비스포큰]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실리콘밸리의 '비스포큰 스피리츠'가 위스키 간편 제조 기술을 선보이며 5000억 달러(약 577조3000억원) 규모 글로벌 양주 시장에 도전했다고 전했다. 비스포큰 공동설립자인 스튜 애런은 이날 액티베이션(ACTivation)이라는 자체 기술을 활용한 간편 위스키 출시를 알렸다. 애런은 "기존의 위스키는 술 성분인 주정(spirits)을 배럴에 넣은 후 숙성되기를 기다려 만들었는데 액티비전 기술은 반대로 배럴에 주정을 넣는 방식"이라면서 "기존 방식은 수십년이 걸리지만 우리 방식으로 단 며칠만에 프리미엄 술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간편 양주 제조 과정에는 주정과 나무, 탄소 물질인 차(char)만 활용되고 주정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술 20%가량이 증발하는 이른바 '천사의 몫'(angel's share) 없이도 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비스포큰 측 설명이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사태와 관련해 애런 공동 창업자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폐쇄 여파로 맥주 양조장들이 팔리지 않는 맥주를 버려야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맥주를 버리는 대신 간편 숙성을 통해 위스키를 만들 수 있고 다른 술로 브랜디·럼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비스포큰은 블룸에너지 출신 스튜 애런(왼쪽)과 마틴 야누섹(오른쪽)이 공동 창업했다.
비스포큰 출시 소식에 대해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 협회(SWA)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지만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최고의 유격수'로 활약했던 데릭 지터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주 소재 유명 와인업체 클로스데라테크의 T.J. 로저스 등이 비스포큰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SWA 관계자는 "유럽에서 '위스키'로 판매되려면 적어도 3년 숙성 기간은 거쳐야 한다"면서 "오랜 전통을 가진 위스키의 명성을 지켜야 하며 다른 기술로 생산된 술이 위스키의 평판을 부당하게 악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위스키 숙성 기간에 대한 별다른 기준이 없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스트 스피릿은 화학 원자로를 사용하고 오하이오 에 있는 클리블랜드 위스키는 주정을 배럴 목재와 함께 탱크에 넣어 혼합물을 산화시킨 후에 압력을 가해 만드는 등 제각각이다.
비스포큰은 블룸에너지 출신 스튜 애런과 마틴 야
누섹이 공동 창업했다. 블룸에너지는 세계적인 SOFC(고체산화물연료전지) 주기기 제작업체로 지난 2018년 7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애플·구글·이베이 등이 블룸에너지 주요 고객이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