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 속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월가가 빠른 테세전환을 하고 있다.
기존 트럼프의 친시장 정책에 높은 점수를 주며 재선 시 시장 충격이 덜 할 것이라고 관측했던 골드만삭스 등 금융투자업계의 거물기업들이 바이든 후보가 이끌 미국 경제의 청사진을 긍정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하는 월가의 생존 본능이 바이든의 대선 승리 쪽으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온다.
CNN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지난 5일(현지시간) 내놓은 시장전망 보고서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이끄는 '블루 웨이브'(민주당의 공화당 기선제압)가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다고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최근 두 자릿수 이상 지지율 격차를 벌이고 있는 바이든 후보의 약진으로 이 블루 웨이브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며 "민주당이 대통령 자리와 의회를 모두 장악하면 최소 조 달러 이상 재정 부양 패키지가 나올 여력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소극적인 공화당과 달리 코로나19 부양 패키지의 덩치를 키우려는 민주당의 입장을 부각시키며 선거 후 더 과감한 정부 지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넉 달 전 민주당과 바이든 후보의 과격한 증세 움직임을 비판하며 "코로나19보다 바이든의 조세 정책이 더 위협적"이라고 평가절하했던 것과 180도 달라진 내용이다. 골드만삭스는 인프라스트럭처, 기후변화, 의료, 교육 부문 등에서 바이든 후보와 민주당의 대규모 지출 의지가 공격적 조세 정책에 따른 기업 수익성 악화를 상쇄할만큼 미국 경제의 성장 여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간 월가는 민주당과 바이든 후보의 경제 정책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해왔다. 공교롭게도 경제 공약은 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큰 차별화를 시도하는 부분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 의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 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 여력 확충을 위해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행정부가 낮춰놓은 각종 세율을 트럼프 집권 이전으로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으로 당선 시 바이든 후보는 현재 21%인 미국 법인세율을 28%로 인상하고 기업들이 해외에서 번 이윤에도 과세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거둔 수익에 대해 부과했던 최저 세율을 10.5%에서 21%로 두 배 올리고 조세 피난처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해외 이전을 시도하는 미국 기업에 징벌적 과세(Offshoring Tax Penalty)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세율까지 적용되면 미국 기업의 법인세는 최고 30.8%(28%+2.8%)까지 오를 수 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최근 바이든 후보의 조세공약을 펜 와튼 예산 모델(PWBM)로 분석한 결과 "향후 10년 간 세수가 3조3750억달러(4000조원)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기업과 고소득자들의 호주머니가 줄어든다는 뜻이지만 바이든 후보의 임기 내 지출이 확대된다면 이를 충분히 상쇄하는 경제 활력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게 최근 월가의 변화한 관측이다.
다만 이 같은 낙관론은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의 당선과 함께 민주당도 의회를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11월 3일 선거 결과가 더욱 주목되는 상황이다.
11월 3일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백악관 주인을 누구로 할지와 더불어 상원의원 100명 중 35명, 하원의원 435명 전원을 새로 뽑는다. 현재 하원은 민주당우세가 유력하지만 53명(공화당) 대 47명(민주당) 구도인 상원은 박빙이 예상된다.
바이든 후보와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백악관을 차지하고 상원 구도를 50 대 50으로 바꾸면 시장이 바라는 공격적 경기부양 눈높이를 한결 수월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
상원 선거 대상인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경우 재선을 노리는 톰 틸리스 공화당 소속 의원이 지난달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마련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후보 지명식에 참석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낭패를 맞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는 민주당 후보인 칼 커닝햄에 지속적으로 밀리고 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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