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쳐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에 감염돼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월스트리트 증권가를 비롯한 뉴욕증시가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와 대척점에 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지지율을 높여가자 트럼프 재선 캠프만 불안해하는 것은 아니다. 월가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바이든 후보의 법인세 정책 여파를 분석하면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 'MAGA'(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 알파벳·아마존) 등 뉴욕증시 간판격인 정보기술(IT) 기업 수익이 두자릿 수 하락률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BofA 글로벌보고서를 인용해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 법인세 공약에 따라 세금 정책으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 수익이 9.2%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통신서비스 분야 기업들 수익은 평균적으로 -12%선, IT 분야 기업들 수익은 -10~-11% 줄어들 것이라는 추정도 딸려나왔다. '대형주 위주' S&P500지수는 '소수 우량주 위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기술주 위주' 나스닥종합주가지수와 더불어 뉴욕증시 3대 대표 지수다.
BofA는 이번 보고서에서 바이든 후보의 법인세 정책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 기존 법인세율 21%를 28%로 올리고 ▲ 새롭게 기업 최저한세제도(minimum tax)를 도입하며 ▲ 미국 기업의 해외 수입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중 특히 IT분야 부담을 키우는 부분은 '기업 해외 수입에 대한 세금 부과'다. S&P500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전체 매출 중 미국 내 매출이 차지하는 평균 비중은 60.3%지만, IT기업들은 43.5%에 불과해 해외 수입이 더 많다. 유럽 발 '디지털세' 압박을 받고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 바이든 후보의 해외 수입세는 부담감이 더해지는 조치다.
최근 유럽연합(EU)은 MAGA나 페이스북을 겨냥해 같은 미국 'IT 공룡'기업들이 유럽에서 큰 이익을 내면서도 세율이 낮은 조세 회피처에 법인을 두는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디지털세' 도입을 적극 추진해왔다. 프랑스 같은 경우는 이들 기업이 프랑스에서 올리는 연 매출의 3%를 법인세로 부과하자는 식이다. 지난 달 11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부 장관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올해 안으로 디지털세 도입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EU차원에서 2021년 초까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재촉하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말 세법을 개정해 연방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춘 바 있는데 바이든 후보는 이를 다시 인상하겠다는 입장이다. BofA분석에 따르면 S&P500지수 포함 기업들의 평균 실효 법인세율은 2017년 24.37%에서 지난 2019년 17.50%까지 떨어졌다. 해당 지수 포함 기술 기업 중 2019년을 기준으로 실효 법인세율이 높은 것은 페이스북(25.50%·2017년 22.63%), 아마존(16.99%·2017년 20.20%), 애플(15.94%·24.56%), 구글 알파벳(13.33%·53.44%), 마이크로소프트(10.18%·8.40%) 순이다. 이들 주요 5대 IT기업 중 2017년에 비해서 실효 법인세율 부담이 가장 많이 낮아졌던 것은 구글 알파벳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히려 2019년 들어 세부담이 늘었다.
현재 바이든 후보 측이 구체적인 최저한세율을 제시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최저한세율이란, 법인이나 개인사업자가 정부로부터 각종 조세 공제·감면 혜택을 받더라도 최소한도의 세금은 납부하게 하는 제도다. '과세부담 형평성'과 '정부의 재정 확보'차원에서다.
WSJ은 '바이든 증세' 충격파가 기술주 주가 급등에 힘입어 상승세를 보여온 뉴욕증시를 흔들 수 있다고 봤다. 또 코로나19 백신 개발 희소식이 맞물리는 경우 기술 부문이 아닌 다른 부문이 뉴욕증시를 이끌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IT 분야는 올해 코로나19 사태 동안 이른바 '언텍트 주'로 꼽히면서 증시 상승세를 끌어왔다. 아마존이 올해 주가 69%, 애플은 54% 급등하는 식이다. 기업 수익 전망은 주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IT 대기업 법인세 인상은 주가 하락 압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BofA 외에 골드만삭스는 바이든 후보의 양도소득세 인상 추진을 근거로 주식시장에서의 모멘텀 이동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모건스탠리 자산운용은 최근 실물 경제가 빠르게 반등할 것으로 보고 그간 고전하던 공업·원자재·금융 부문 주식들을 사들였다. 모건스탠리의 리사 샬렛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그간 증시를 주도한 일부 기업들이 바이든 후보의 증세 정책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이런 점 등을 고려할 때 '섹터 로테이션'(증시에 유입된 투자 자금이 한 업종에서 다른 업종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주요 IT 기업 주가가 반드시 하락한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바이든 후보가 공약한 대로 수조 달러 규모 추가 재정 지출을 단행하면 법인세 인상 효과를 일부 되돌릴 수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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