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불과 한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지형에도 뜻밖의 충격파가 가해졌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증상은 미열과 기침 정도로 경미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날부터 메릴랜드주 월터 리드 군 병원에 입원해 며칠간 집중적인 관리를 받을 예정이어서 조기에 회복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나이(74세)와 비만을 거론하며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지만 현재로선 1~2주 안에 완치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대통령 권한을 위임하지 않은 것도 조기 회복을 자신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대선 레이스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 먼저 마스크 착용을 사실상 거부하고, 대규모 오프라인 유세를 계속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확진되면서 책임있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면 유세를 자제하고 마스크 착용을 강조해온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이날 음성 판정을 받은 것도 대조를 이룬다. 바이든 후보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해왔다고 비판해왔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은 결과적으로 바이든 후보의 대응 방식이 옳았다는 방증이 되고 말았다.
바이든 후보는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과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 감염이)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손씻기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는 7일(현지시간)로 예정된 부통령 후보간 TV토론에서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코로나19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공략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전국 지지율에서 10%포인트 안팎 뒤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막판 경합주 집중유세를 통해 대역전극을 노리려던 계획에 물리적 차질도 발생했다. 당장 의무 격리 기간인 14일 동안 대면 유세가 불가능해졌다.
AP통신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대유행)이 최악의 국면을 지났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큰 타격이 됐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비서진은 물론 비밀경호국과 에어포스원 승무원들도 마스크를 쓰는 사례가 드물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스스로 질병예방의 법칙을 어기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은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발생 가능한 최대 사건이긴 하지만 아직 선거 결과에 미칠 영향을 속단하긴 이른 듯 하다. 미국 선거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충성도 높은 지지층에게는 이번 사안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저녁 트위터에 직접 영상 메시지를 올리고 "매우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엄청난 지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문자가 아닌 육성 메시지를 올린 것은 지지층에게 자신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골수 지지층은 물론 중도보수 유권자들에게도 일종의 '동정표'가 몰리며 세 규합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유권자는 10% 안팎에 그친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이 이번 사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가정한다면 결국 부동층 10%가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선 결과가 좌우될 수 있겠다.
한편 호프 힉스 백악관 고문에서 시작된 백악관내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에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유세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했던 톰 틸리스, 마이크 리 상원의원과 켈리엔 콘웨이 전 백악관 고문도 이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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