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74) 미국 대통령이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에 감염돼 결국 백악관을 떠나 인근 월터 리드 육군 의료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코로나19는 독감같은 것'이라면서도 백신 개발을 재촉해가며 재선에 공들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감염되자 '글로벌 금융시장의 심장부' 뉴욕증시에서는 3대 대표 주가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다만 월스트리트 증권가에서는 증시가 9월에 한 차례 조정을 겪은 만큼 최악의 '패닉셀'(주가 급락 공포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앞다퉈 매도에 나서는 것)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분위기다.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 10분께 백악관을 걸어나와 전용 헬기를 타고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소재 월터 리드 육군 병원으로 향했다. 검은 정장 차림에 검은 색 마스크를 쓴 그는 취재진을 향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같은 날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대통령은 의료진 권고에 따라 예방적 조치 차원에서 며칠간 월터 리드에서 업무를 볼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가벼운 증상이 있지만 기분이 좋은 상태이며 오늘도 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열과 기침, 코막힘 증상을 겪고 있으며 심각하게 아픈 것은 아니지만 위험 요인(나이 등)을 고려해 병원에 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스스로를 '미국의 치어리더'라고 불러온 트럼프 대통령이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더불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2일 뉴욕증시 개장 전 알려졌기 때문에 이날 증시 하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소수 우량주 중심'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0.48% 떨어지는 데 그쳤지만 '대형주 중심'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0.96% 하락했다.
'기술주 중심' 나스닥종합주가지수는 2%가 넘는 낙폭을 보이며 2.22% 떨어졌다.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올해 3분기(7~9월) 전기차 인도 실적이 잘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새 7.38% 떨어졌다. 2일 테슬라는 3분기 생산량이 14만 5036대, 인도량이 13만 9300대라고 밝혔다. 테슬라 3분기 인도 실적을 13만 6000대 정도로 예상한 월가 전망치를 넘어선 수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감염 소식에 따른 기술주 하락세 속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제시해온 올해 인도 실적 50만 대를 채우기에는 부족하다는 시장 평가가 더해지면서 낙폭이 두드러졌다. 반면 '사기 의혹'을 받아온 나녹스는 이날 뉴욕증시 혼란 속에 오히려 주가가 56.20% 올랐다.
◆ 공포지수 3.48%↑불구 안전자산 가격 ↓…월가 "증시 반응 이 정도면 무덤덤" vs 글로벌도박업체 "美대선 베팅 일단 중단"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감염 소식은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을 키우고, 미국 대선에 대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다. '공포 지수'로 통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이날 하루 새 3.48%올랐다. VIX는 S&P500지수에 기반한 옵션 가격 변동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다만 월가 전문가들은 뉴욕증시가 크게 출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우선 네이션와이드의 마크 해켓 선임투자자는 2일 증시 상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감염 소식에 대해 생각보다 주가가 덤덤하게 반응한 것 같다"면서 "특히 일자리 보고서가 썩 좋지 않게 나왔는데도 시장이 이 정도만 하락세를 보인 것은 좋은 신호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2일 오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월간 일자리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9월 비농업 일자리는 66만1000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자리 증가세가 석 달 연속 둔화된 결과다. 66만1000개는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80만개보다도 적은 수치이고 한 달 전인 8월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일자리 시장은 지난 6월 역대 최대폭인 479만개 증가 기록을 냈지만 코로나19가 다시 빠르게 번진 7월 이후 증가세가 주춤하는 모습이다.
모건스탠리의 앤드류 슬리먼 선임 포트폴리오 책임자는 '안전 자산'격인 금 값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만약에 오늘(2일)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형 거래가 이뤄졌다면 금 가격이 올랐어야 하는데 오히려 떨어졌다"면서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 감염이라는 예상치 못한 소식이 나오기는 했지만 시장은 이미 9월에 충분히 후퇴하면서 과한 투자 열풍이 한 차례 사그라들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금과 더불어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장기 국채 수익률은 이날 오히려 소폭 올랐다. 2일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2.0bp(1bp=0.01%포인트) 상승한 0.70%, 30년물은 3.0bp 오른 1.48%에 거래됐다. 국채는 정부가 채권을 일단 입찰하고 난 후 채권 수요가 줄어들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수익률은 오른다. 통상 시장 위험이 증가하면 안전자산 선호 현상 때문에 금 값이 오르고 미국 국채 수익률은 떨어진다.
한편에서는 10월 뉴욕증시 상승을 점치는 듯한 소식도 나왔다. 2일 CNBC방송은 익명의 증시 트레이더들을 인용해 뉴욕증시에 '고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다시 출몰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고래란 규모가 큰 자금력을 이용해 시장 주가를 들썩이는 대형 투자자를 부르는 시장 용어다.
CNBC는 "옵션 시장 주요 트레이더 여럿에 따르면 지난 1일 목요일 오전에 넷플릭스·아마존·페이스북·구글 알파벳에 대한 콜 옵션 자금이 2억 달러(약 2338억원)어치 들어왔다"면서 "해당 콜옵션 구매한 것은 투자은행 같고, 이 투자은행을 통해 콜옵션을 사들인 투자자는 소프트뱅크라고 지목됐다"고 전했다.
콜 옵션은 특정 기업·분야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이다. 앞서 지난 달 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신문과 월스트리트저널(WSJ)신문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올 여름 나스닥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애플과 테슬라, 넷플릭스 등 기술주 주식과 콜옵션을 40억 달러(약 4조 6760억원)어치 대량 매수해 8월 기술주 상승 랠리를 이끈 배후로 지목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시장 하락세를 키울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의회가 추가 부양책을 빨리 내야한다고 재촉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캐피털의 패트릭 레어리 수석 전략가는 "지금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당파 정치를 할 때가 아니다"라면서 "백악관과 하원이 하원이 대규모 추가 부양책에 합의하지 못하면 증시는 최소 5% 떨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코카콜라와 골드만삭스가 대량해고에 나섰고, 항공업계에서는 3만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일시해고 위기에 놓였다. 이 때문에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과 '2.4조 달러(약 2805조 6000억원) 추가 부양책'을 두고 협상 중인 낸시 팰로시 연방 하원의장은 특히 타격이 큰 항공업계를 향해 부양 합의 가능성을 거론하며 일시 해고를 멈춰달라고 언급한 상태다. 내티시스 인베스트먼트의 알렉스 파이어 시장전략가는 "주식 시장은 V자 형 회복이 가능할 지 몰라도 미국인들의 진짜 현실을 들여다보면 실물 경제 회복은 L자 형"이라면서 "일자리 보고서만 봐도 더 많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래드브로크스와 윌리엄 힐 등 글로벌 도박업체들은 2일부로 당분간 미국 대선 관련 베팅을 중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래드브로크스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오는 11월 미국 선거인단 투표를 비롯한 대선 일정에 대한 모든 베팅을 일시 중단한다"면서 "대통령의 상태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나올 때까지 중단하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3일 김정은 北위원장 "도날드 각하 쾌차 기원" 위로 전문 공개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위로 전문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미합중국 대통령 도날드 제이 트럼프 각하, 나는 당신과 영부인이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하였습니다.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위문을 표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당신과 영부인이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당신은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당신과 영부인께 따뜻한 인사를 보냅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각 국 정상 중에서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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