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사태로 전세계가 고통받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시장의 심장부' 뉴욕증시에서는 갈수록 기술주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 업계 시가 총액 1위'인 전기 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1주당 주가가 2000달러 선을 뚫었고, 애플은 앱 스토어 수수료 갈등에 휩싸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래 마감 가격(종가)을 기준으로 뉴욕증시 역사상 처음으로 시총 2조 달러를 돌파했다. 두 기업을 포함한 미국 7대 기술기업 시가 총액은 미국 중소기업 2000곳 시총 전체 합계의 4배를 넘어섰다. 이런 상승세는 지난 주 미국 신규 실업 급여 신청 건수가 1주일 만에 다시 100만 건대로 늘어나는 등 일자리 시장 분위기가 어둡고, '미국 4대 항공사'인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오는 10월 이후 미국 내 일부 지역 운항을 중단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식으로 주요 산업 부문 역시 비관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과 반대되는 분위기다.
20일(현지시간) '나스닥증권거래소의 간판주' 테슬라는 6.56%급등해 2000달러 선을 뚫었다. 테슬라 주식은 이날 1주당 2001.83달러로 거래를 마감했고 그 결과 시총은 3730억 6400만 달러로 불어났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슬라가 '뉴욕증시 3대 대표지수'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에 포함된 기업들 중 시총 상위 1~7위를 제외한 8위 이하 기업 시총을 제쳤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테슬라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내년부터 테슬라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중국에서 모델Y를 생산·판매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결과다. 20일 중국 관영언론인 글로벌타임스는 테슬라 고위경영진을 인용해 "테슬라는 오는 2021년부터 상하이기가팩토리에서 '중국산 모델Y'를 만들어 판매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테슬라는 중국 공장인 상하이기가팩토리에서 보급형 전기차인 모델3만 생산·판매하고 있다. 모델Y는 중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로 모델3보다는 가격이 비싸지만 중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기존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 이날 중국발 소식은 중국 상하이 시가 자유무역시험구역 린강지구 1년 기념행사를 열면서 '외국인 지분 100% 자동차 해외법인' 1호 기업인 테슬라중국법인 등을 초청한 자리에서 나왔다.
테슬라는 애플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미국 주식 투자 선호 1~2위를 다투는 회사다. 테슬라는 오는 9월 22일 '배터리데이'와 S&P 500지수 편입을 앞두고 이달 초 5대 1주식 분할을 발표하면서 최근 주가 급등세를 이어왔다. 특히 배터리데이와 관련해 지난 18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테슬라 최대 협력사인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이 니켈·코발트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새로운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 중이며 이렇게 되는 경우 고가의 니켈·코발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배터리 가격과 전기차 생산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업계에서는 CATL이 테슬라와 손잡고 '100만 마일 배터리'(한 번 충전하면 160만㎞를 달릴 수 있는 고효율 배터리)를 공개할 것이라는 추측도 하고 있다.
한편 CNN비즈니스는 20일부로 미국 '7대 기술주'의 시총이 이날 7.7조 달러를 돌파했다고 전했다. 뉴욕증시에 상장한 미국 2000여 개 중소기업 종합 지수인 러셀2000지수 시총(1.9조 달러)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7대 기술주란 나스닥증권거래소 대장주인 'MAGA'(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 알파벳·애플)를 비롯해 페이스북과 테슬라, 넷플릭스를 묶어 부르는 것이다. S&P500지수에 편입돼 있는 MAGA와 페이스북은 지수 내 비중이 25%를 넘나든다. 월가에서는 이른바 '언텍트 주 열풍'을 타고 애플이 20일 종가를 기준으로도 2조 달러를 돌파(2.02조 달러)한 데 이어 아마존 등 나머지 MAGA기업도 2조 달러 클럽에 빠르게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주가 이끄는 뉴욕증시 상승장세에 대해 같은 날 로이터통신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새로운 강세장 속에서 월가 투자자들의 공포가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2차 유행 단계에 들어선 데다 미국 내에서는 코로나19 추가 부양안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실업자가 늘고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지수'로 통하는 뉴욕주식시장 변동성지수(Cboe변동성 지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Cboe변동성 지수는 20일 22.72포인트를 기록해 코로나19가 미국에 본격적으로 닥친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간 월가에서는 '7월 거품 붕괴설'이 끈임없이 나왔지만 이달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는 모양새다. 주요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최근 주요 펀드매니저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들 중 80%에 이르는 사람들이 내년 글로벌 경제 회복을 기대하는 한편 현재 뉴욕증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또다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번 주 초에 "2021년 미국 기업 수익 여건과 미국의 국내 총생산(GDP)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면서 올해 말 S&P 500전망치를 기존 3000포인트에서 3600포인트로 올려잡았다. 이어 지난 19일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최근 뉴욕증시 상승세와 관련해 현재의 상황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이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
다만 실물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 20일 로이터통신은 이달 14~20일 간 110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미국 경제가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년 이상이며 1년 내 회복할 것이라고 본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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