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7%. 이 숫자가 9일(현지시간) 밤 옛 소련에서 독립한 동유럽의 작은 나라 벨라루스를 뒤흔들어놨다. 이날 치러진 대선에서 알렉슨드르 루카셴코(65) 현 대통령이 8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할 것이란 소식에 시민들이 대거 거리로 뛰쳐나와 경찰과 세게 충돌한 것이다.
이날 AP통신, 미 뉴욕타임스(NYT)등에 따르면, 벨라루스 국영 '사회연구청년실험실'이 실시한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수도 민스크를 포함한 벨라루스 전역에 수천명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일부는 루카셴코에 대립각을 세우는 망명 정부 '벨라루스인민공화국' 국기를 흔들었다고 외신이 전했다.
군인과 경찰은 주요 도로를 봉쇄하고, 곤봉을 휘두르고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진압했다. 벨라루스 경찰당국은 정확한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 백명이 체포되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인권단체 주장이 나왔다. 경찰 트럭이 시위 군중을 들이받아 부상을 입혔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긴장이 고조됐고, 시위대와 섞여 있던 AP 등 일부 기자들이 경찰에 구타당하기도 했다.
벨라루스 전역에서 인터넷 연결이 차단됐고, 휴대전화 통화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스크 외에 북동부 도시 비텝스크, 남서부 도시 브레스트 등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출구조사 6.8%의 득표율에 그친 야당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7)가 "나는 내 눈을 믿을 것이다. (유권자) 대다수는 우리 쪽이었다"고 말하면서 시위의 불을 당겼다. 민주적 선거가 이뤄지도록 감시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이번 선거에 참관 초청받지 못했으나,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젠은 국제 참관단으로 초청됐다.
벨라루스 국민들은 루카셴코의 강압적 통치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1994년 벨라루스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5차례 연임에 성공, 26년째 대통령 자리를 지키면서 언론과 야권을 탄압하고 있다. 루카셴코의 별명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다.
애초 반부패 운동가로 명성을 떨친 루카셴코는 1994년 벨라루스의 소련 독립 이후 실시된 첫 자유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그러나 1996년 초대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늘리고, 대통령에게 일부 국회의원 임명권 등을 부여하는 등 권위주의 통치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는 보드카를 마시거나 사우나를 하면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국제적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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