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가 어디나 널려있습니다. 적들의 시체를 치워주고 싶진 않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저로서는 할 일이 계속 생기는 셈이죠. 페루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탓에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치우던 올란도 아르테아(40)가 씨가 21일(현지시간) CNN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아르테아가 씨는 베네수엘라에서 페루로 건너왔다. 일주일 내내 밤 늦게까지 페루 수도 리마 빈민촌을 돌아다니며 시체를 회수한 후 화장터에 가져가 이를 태우는 일을 한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진 사람의 시신을 치우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 옮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겨진 것은 품위 없는 죽음이다. 중국발 코로나19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공공보건시스템이 취약한 탓에 페루에서는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죽어가고 가족들은 제대로 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다.
페루는 지난 5월 봉쇄령을 해제하고 경제 재개에 들어갔지만 이후에도 코로나19 피해가 급속히 퍼지면서 22일 확진자(총 36만 6550명·사망 1만 3767명)를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피해가 크다. 사망자는 공식 집계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페루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브라질에 이어 두번째로 피해가 크다.
빈민촌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페루는 정책 이념·외교 노선·이주민 문제 등으로 사사건건 마찰을 빚던 이웃나라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다시 받아들였다. CNN은 리마에 있는 대형 공동 묘지 '엘 앙헬' 에서 시체 처리작업을 하는 직원 상당수가 베네수엘라 사람이라고 전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페루는 베네수엘라를 빠져 나온 사람들에게 입국 제한을 하는 식으로 제동을 걸어왔고 코로나19가 대륙에 본격 상륙한 올해 3월에는 국경 문을 걸어잠근 바 있다.
코로나19는 저소득 층의 목숨 뿐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일자리도 빼앗아간다. '세계 구리 수출 2위' 페루에서 코로나19 피해가 오히려 커지면서 광업 생산이 위축되자 세계은행(WB)은 페루가 라틴아메리카 주요 8개국 중 경제가 가장 큰 폭으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봤다. WB은 지난 4월에 올해 페루 경제 성장률을 -4.7%로 예상했다가 지난 6월 -12%로 낮춰 잡았다.
페루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저소득층에게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게 외신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 5월 부로 역사상 9번째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을 맞은 아르헨티나는 며칠 새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22일 아르헨티나 보건부에 따르면 하루 새 신규 확진자가 5782명 발생해 사상 최고 증가폭을 기록했다.
유엔(UN)은 올해 아르헨티나에서는 팬데믹 상황이 겹치면서 아동·청소년 빈곤율이 58.6%에 이르고 경제는 최악의 경우 -12.0% 역성장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아동·청소년 빈곤율은 작년(53%)보다 5.6%p높은 수치이며 올해 아르헨 일자리는 최대 85만개 사라질 것이라는 게 UN전망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7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봉쇄령을 해제했다. 정부는 650억 달러가 넘는 해외 채무를 두고 채권단과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WB는 앞서 4월 '일자리 붕괴·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락'등을 이유로 아르헨티나 올해 성장률을 -5.2%로 제시했다가 지난 6월에는 -7.3%로 더 낮춰잡은 바 있다.
빈곤율을 절반 낮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코로나19로 빈곤율이 다시 올라갈 위기에 놓였다. 22일 뉴욕타임스(NYT)는 커피 등 농작물을 키우거나 도시에서 봉재일을 하는 식으로 저임금 노동을 해온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뚝 끊겼다고 전했다. 지난 달 WB은 올해 콜롬비아 경제가 -4.9% 역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최근정부는 이보다 더 뒷걸음질한 -5.5%를 예상하고 있다. 주력 수출품인 커피·꽃(화훼) 산업이 코로나19 탓에 타격을 받은 탓이다.
콜롬비아는 지난 2018년 빈곤율이 27%로 2002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는데 팬데믹을 계기로 빈곤율이 더 높아질 위기에 처했다. 현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류층이 6층 주민, 저소득층이 1층 주민으로 불리는데 극빈층은 0층 주민으로 불린다. 존재하지 않는 층수에 빗대어 있으나 마나한 빈곤층이라는 점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비속어다. 현지 안데스 대학 연구진은 "콜롬비아의 불평등도가 20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UN은 팬데믹 기간에 한해 전세계 최빈국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날 유엔개발계획(UNDP)의 아킴 슈타이너 총재는 보고서를 내고 "전세계 132개 개발도상국에 사는 27억 명 시민에게 일시적으로라도 기본 소득을 주어야 한다"면서 "채무 탕감·경제회복 지원책은 단순히 큰 시장·대기업에만 초점을 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UNDP는 기본소득 지급 방안에 대해 ▲ 각 국 평균 소득에 근거하는 방법 ▲ 각 국 중위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하는 방법 ▲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일정 금액을 주는 방법 등 총 세 가지를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특히 저소득층 여성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총재는 앞서 21일 IMF블로그를 통해 '코로나19와 성별 차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집중적으로 타격을 입은 업종은 관광·서비스 부문인데 이들 부문은 임시직 일자리·저소득층 여성의 비중이 높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국가일수록, 또 여성일수록 취업자 중 비공식 취업자 비중이 높다"면서 "각 국 정부가 저소득 여성의 일자리와 근로 여건 개선책을 내지 않으면 경기 침체 타격은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오르기에바 IMF총재는 인도를 예로 들면서 "인도 주요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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