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탓에 사상 최악의 순손실을 입었던 '가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대형 거래에 나섰다. 버핏 회장은 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 에너지를 통해 97억 달러(우리 돈 약 11조1600억원)를 들여 미국 천연가스 업체 도미니언에너지 인수에 나섰다. 이번 소식은 버핏 회장이 그간 좀처럼 눈에 띄는 거래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과 더불어 천연가스 시장이 미·중 무역 갈등과 직결된 분야라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버크셔해서웨이에너지는 지난 달 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처음으로 민간 회사채 개별 구매에 나서면서 회사채를 구매한 대상 기업으로 한 차례 주목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 대규모 거래에 나서면서 다시 한 번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5일(현지시간) 미국 CNBC는 버크셔해서웨이에너지가 미국 천연가스 업체 도미니언에너지의 에너지 운송·저장 자산을 현금으로 인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버크셔에너지가 현금으로 지불할 도미니언에너지 자산 인수 금액은 40억 달러이지만, 도미니언에너지의 부채가 57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버크셔에너지가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금액은 97억 달러로 100억 달러에 달한다.
인수 작업은 규제 당국 승인을 거쳐 오는 4분기께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계약 조건을 보면 우선 수송 분야에서 버크셔에너지가 도미니언에너지의 수송관 등 트랜스 미션, 퀘스타 파이프라인과 캐롤라이나 가스 트랜스미션 지분을 100% 인수하고 이로쿼이스(Iroquois) 가스 트랜스미션 시스템 지분 절반인 50%도 인수한다. 다음으로 수출·입 저장 시스템 분야에서 버크셔에너지가 도미니언에너지 측의 코브 포인트 액화천연가스(LNG) 지분 25%를 인수하기로 했다. 코브 포인트 LNG는 미국 내 6개에 불과한 LNG 수출 터미널 중 하나다.
이번 움직임에 대해 CNBC는 "버크셔가 미국 천연가스 업계에 더 큰 발자국을 남기게 됐다"고 평가했다. 버크셔에너지의 미국 내 천연가스 수송량 비중은 8%정도이지만 도미니언 운송·저장 자산을 인수함에 따라 버크셔에너지의 천연가스 수송량 비중이 18%로 늘어나게 된다. 미국에서 천연가스는 난방 연료 중 25%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버핏 회장이 대규모 거래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이후 처음이다. 회장은 지난 5월 2일 온라인 주주총회 당시 "괜찮은 것들이 보이면 (거래)할 생각이며 언젠가는 그럴 것"이라면서 미국 4대 항공사 주식 전량 매도 사실을 밝히면서도 "지금으로선 매력적인 것이 보이지 않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 바 있다. 당시 버크셔는 '분기별 실적 보고서'를 통해 올해 1분기(1~3월) 회사가 497억 4600만 달러 (약 60조 8891억원) 순 손실을 냈다고 밝힌 바 있다. 코로나19 탓에 버크셔가 투자하고 있는 에너지·금융·항공 분야 기업이 고전한 결과였다. 1분기 버크셔는 현금성 자산·단기 투자금을 2019년 4분기(1280억 달러)보다 93억 달러 많은 1373억 달러 보유 중이다. 이후 버크셔는 2분기 들어 금융주도 대거 내다팔았다.
버핏 회장이 현금만 쌓아두고 있는 가운데 지난 달 말 연준이 버크셔에너지 회사채 구매를 공개하면서 월가에서는 '현금 부자인 버핏 회사를 왜 돕느냐'는 불만이 나온 바 있다. 연준은 3월 23일 경기 부양 프로그램을 발표한 후 5월 중순 민간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를 구매한 데 이어 지난달 16일부터는 민간 기업 개별 회사채도 사들이기 시작했다. 연준이 첫 구매 회사채 매입 대상으로서 지난 달 28일 발표한 목록에는 버크셔에너지가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시장 조사업체 퀼 인텔리전스의 대니얼 디마티노 부스 대표는 같은 달 30일 CNN인터뷰에서 "정말 당황스럽다"며 "버핏은 연준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고 현지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BI)는 "버핏과 버크셔는 쉽게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업체여서 도움이 필요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버크셔에너지가 중점 인수한 것은 천연가스 채굴 부문이 아니라 수송·저장 부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는 버핏 회장이 버크셔에너지를 통해 대규모 인수전에 나선 것이 천연가스 가격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지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전세계 각 국 제조업 경기가 침체되면서 석유 가격이 지난 해보다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천연가스 가격도 석유 가격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저점을 맴돌고 있다.
천연가스는 미·중 무역 갈등 주요 이슈 중 하나로 양국 관계 개선은 미국 천연가스 업계 입장에서는 수출 호재다. 미국 천연가스·LNG협회의 회장인 프레드 허치슨 회장은 "미국과 중국은 장기적인 LNG 무역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로선 중국이 미국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1단계 합의만큼 구매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 최대 수입국'인 중국 움직임에 따라 천연가스 구매가 활발히 이뤄질 여지는 남아 있다. 올해 1월 중국은 미국과 1단계 무역협의를 하면서 농산물 외에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일정 액수 이상으로 구매하기로 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은 올해 미국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250억 달러, 2021년에는 그 이상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다만 2020년 미국 수출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5월까지 미국 에너지를 20억 달러만큼만 구매했다. 이 때문에 텍사스 주의 조지 애링턴 의원과 루이지애나 주의 스티브 스캘리스 의원 등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 의원들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이 미국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USTR이 나서서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촉구하라'는 압박성 서한을 보낸 바 있다. 피터슨 국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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