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都) 지사(4년 임기) 선거에서 어제(5일) 재선이 확실시되는 67살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지사는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문화가 강한 일본 사회에서 '유리천정'을 뚫어온 여성 정치인의 대표 주자로 꼽힙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감염 확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거리 유세를 한 차례도 하지 않고 승리하는 진기록을 세울 전망입니다.
현직 프리미엄이 작용해 이번 선거전은 일찌감치 고이케 지사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독자 후보를 내지 않은 채 필요에 따라 손을 잡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했던 고이케 지사를 후원하는 쪽으로 일찌감치 가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야당 세력은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표를 분산시키는 결과를 낳아 고이케 지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를 앞두고 확산한 코로나19 사태는 고이케 지사에게 현직 프리미엄을 잔뜩 안겼습니다.
고이케 지사는 지난 3월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코로나19를 이유로 내년 7월로 연기된 직후 '도시봉쇄'라는 말까지 동원해 긴급사태로 대응해야 한다고 중앙정부를 압박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유권자들의 호감을 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이케 지사는 중앙정부가 긴급사태를 선포한 후에는 외출하지 말고 집에 머물라는 의미인 '스테이 홈'을 주창하는 등 메시지 전달력이 강한 짧은 구호성 문구를 활용해 시선을 끌었습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 대중 노출 빈도를 높인 것도 선거에 도움이 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도쿄의 1천100만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시하는 이슈로 코로나19 대응을 꼽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이케 지사는 잦은 기자회견을 통해 도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이것이 고이케 지사의 1기 도정(都政) 전반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이케 지사는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면 정치적 위상이 한층 높아질 전망입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여제(女帝) 고이케 유리코'라는 제목의 평전이 출간되는 등 고이케 지사는 '여제'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여제라는 별명은 고이케 지사가 재선을 바탕으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나아가는 길을 다져나갈 것이라는 관측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수가 남아 있긴 하지만 1년 연기된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정상적으로 치러진다면 고이케 지사는 개최 도시 수장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 구조상 고이케 지사의 국내외 지명도가 높아지더라도 도쿄도(都) 무대를 넘어 일본을 이끄는 총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는 의원내각제 특성과 일본 정치 풍토를 들어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것이 아직은 요원한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유권자가 직접 뽑는 지자체장과는 달리 의원내각제에선 총리를 제1당 총재가 맡는 구조여서 지지 파벌 확보 등 집권당 내 위상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고이케 지사는 그런 위상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고이케 지사는 일본 주류 정치인 가운데 우익 성향이 강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만일 아베 총리가 나가고 그 자리를 고이케 지사가 승계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의 자치행정 영역에선 개혁적이지만 역사나 외교 문제에서는 아베 총리 이상으로 극우 성향을 보이는 고이케 지사가 걸어온 행보를 보면 그런 전망이 무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2007년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당시에 이를 반대하는 운동을 했고, 자민당이 야당 시절이던 2011년 일본 내 혐한 단체인 '재특회' 강연에 참석해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면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4년에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인정한 1993년의 '고노 담화'를 철회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도쿄도 지사가 되고 나서는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를 추도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행사에 전임 지사들이 1970년대 이후 관례로 보냈던 추도문을 2018년부터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해 거센 비난을 샀지만, 지금까지 그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2003년 3월에는 일본
전쟁 포기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평화헌법 조항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제9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이케 지사의 승승장구를 바라보는 한국 내 시각이 편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