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심장부로 통하는 미국 뉴욕 증시가 최근 급등한 가운데 반대편에선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short-selling) 세력이 2016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증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시중에 빠르게 공급된 단기 유동자금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더블딥'(이중침체)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다.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판데믹(COVID-19전세계 대유행)으로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피할 수 없게 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재무부 등 각 국 금융당국과 정부가 충격 완화 목적에서 대거 돈을 풀면서 딸려나오는 부작용인 측면도 있다. 이런 가운데 뉴욕 증시에서 공매도 세력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 뿐 아니라 유럽 각 국이 자국 증시에서 공매도를 일시 금지한 데 따른 '풍선효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19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주 SPDR S&P 500신탁(SPY)을 대상으로 한 공매도 규모가 681억 달러에 달해 2016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는 한국 돈으로 약 82조 9594억원에 이른다. SPY는 뉴욕 증시 3대 지수 중 대형주 위주로 구성된 S&P500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다. 금융 분석업체 S3에 따르면, 올해 초 코로나19판데믹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SPY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규모가 417억 달러로 1년 전(412억 달러)보다 살짝 많은 수준이었지만 최근 몇 주새 공매도 세력이 부쩍 늘어나면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S3의 이오르 두사니브스키는 시장분석·예측 수석연구원은 "올해 3월 말 사흘 동안 증시가 거침없이 올라 S&P500이 18%급등한 시점에 공매도 세력은 총 1088억 달러 어치 손실을 봤다"면서도 "하지만 하락 조정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공매도에 가세하고 있다"고 전했다. S&P500 추종 ETF인 SPY의 경우 SPY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비중은 4월 초 27%까지 올라온 상태다. 이는 2016년 11월 이후 최고치이며, 올해 초(14%)에 비해서도 비중이 두 배 가량 늘어난 셈이라고 WSJ는 전했다.
공매도가 많이 붙었다는 것은 그만큼 주가 하락 가능성을 점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뉴욕 증시에서 공매도 세력이 가장 많은 것은 여행·관광 분야 주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크루즈선 운영기업인 카니발이다. 카니발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를 손에 쥔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최근 사들여 투자자들의 관심을 산 바 있다. 카니발 외에 로열 캐리비안 크루즈, 글로벌 호텔체인 메리어트 인터네셔널, 라스베이거스에 본사를 둔 고급 카지노·호텔 기업 윈리조트 등에 공매도 세력이 대거 포진해있다고 WSJ가 전했다.
공매도란, 하락장에 베팅하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 주가가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투자자 주식 일정 분량 빌린 후 일단 팔아버렸다가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자신이 빌렸던 만큼 주식을 사들여 되갚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공매도 세력은 지금 1주당 100달러인 A 주식을 10주 빌리고 이를 바로 팔아 1000달러를 받는다. 이후 A 주식 가격이 공매도 세력 예상대로 1주당 50달러로 떨어지면 이 때 주식 10주를 사서 갚으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공매도 세력은 500달러를 최종 차익으로 남길 수 있다. 영화 '빅쇼트' 에서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 이런 위기에 베팅한 주인공들이 대표적인 공매도 세력이다.
공매도는 주로 실시장과 금융시장 괴리가 커서 금융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판단이 들 때 늘어난다. 코로나19판데믹의 경우 지난 2월 19일~3월 23일 한달 동안 S&P500은 34%폭락했다. 코로나19 탓에 주 정부가 이동제한령을 내리고 상업시설을 폐쇄한 가운데 대량 실직 사태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S&P500은 최근 3주 새 28%급등해 하락폭을 대부분 만회했다. 꾸준한 상승세 속에 S&P500은 지난 한 주 동안 12%가 올랐다. 뉴욕 증시에서 4영업일 연속 상승세 기록이 나온 것은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이라고 CNBC가 전했다.
공매도 세력은 뉴욕 증시 3대 대표 지수(우량주 중심 다우존스·대형주 중심S&P 500·기술주 중심 나스닥) 급등세가 사그라들 것이라고 본다. 퍼스트아메리칸신탁의 제리 브라크만 최고운용책임자(CIO)는 "최근 3주간 주가가 너무 빠르게 올랐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상승분 일부는 되돌려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퍼스트아메리칸신탁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100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최근의 상승세는 실물 경기 하락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서는 'V자 반등'이 아닌 '더블딥'을 점치기도 한다. 더블딥이란, 경기가 침체된 후 회복기에 접어들다가 또다시 침체에 빠지는 식으로 알파벳 W식의 이중 침체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경제 전문매체 이코노미스트의 경제정보분석업체(EIU)는 코로나19대응용 재정을 대거 푼 결과 일부 재정 취약국에서 재정 적자가 수년 래 빠르게 불어날 것이라고 지난 달 지적했다. 남유럽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전세계 봉쇄령이 본격화되기 전인 1월 이미 세계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화정책으로 2010년 부터 국가 부채가 누적돼왔는데 이는 1970년대 이후 가장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뉴욕 증시에서 공매도 세력이 늘어난 것은 주가 급등 외에 유럽 각 국 정부가 자국 증시 공매도를 금지한 영향도 받았다고 WSJ는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달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이 연합해 공매도를 금지했다. 이런 가운데 각 국 정부가 코로나19대응용 긴급 자금을 대거 풀기 시작하자 갈 곳 없는 유동성이 뉴욕 증시로 몰렸다는 것이다.
공매도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제이 클레이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시장 거래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공매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두사니브스키 S3 수석연구원은 "늦던지 빠르던지 실물 경제가 회복되면 금융·실물 괴리도 줄어들 것이고 이에 따라 공매도도 일정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미국 기술분야 대장주 격인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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