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자동차, 스마트폰….
수만 가지의 부품과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제품들이다. 미국·유럽을 비롯해 한국·중국·일본 등엔 이런 제품을 자력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 많지만 동남아시아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1980년대 후반 도이머이(쇄신)을 계기로 뒤늦게 경제 개혁·개방에 나선 베트남에는 사실상 없다. 하지만 내년부턴 달라질 것 같다. 베트남 최대 부동산 재벌기업인 빈그룹이 제조업체로 변신하고 있다.
4일 베트남 뉴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빈그룹은 베트남 북부 하이퐁시 경제특구 내 335㏊ 규모의 땅에 자동차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산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빈그룹은 내년 하반기 5인승 세단과 7인승 스포츠유틸리티(SUV)를 연간 10만~20만대 생산할 예정이다. 지난해 베트남 신차 판매량이 27만2750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빈그룹의 생산량은 결코 적지 않다. 유럽 기준에 맞춰 자동차를 만든다. 연내 타결 가능성이 있는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고급·명품 자동차의 메카인 유럽에 베트남 국산차를 수출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브랜드는 '빈 패스트(VinFast)'다. 빈그룹의 국산차 생산 프로젝트엔 전기차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가격은 1만3000달러대(약 1430만원)가 될 전망이다.
파트너도 구했다. 빈그룹은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제휴를 맺었다. 베트남 내 GM 대리점에서 빈그룹의 차량을 판매한다. 또 빈그룹의 자동차 공장에서 GM의 소형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외에 독일 자동차 엔지니어링 업체 EDAG와 이탈리아 디자인 회사와도 협력하고 있다. 베트남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빈 패스트'의 외관은 명품 차량의 상징인 BMW와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그룹은 차량 출시에 앞서 오토바이도 선보일 계획이다.
빈그룹은 스마트폰도 생산한다. 이미 자본금 1억 3100만달러(약 1400억원)로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빈 스마트(VinSmart)'를 설립했다. 하이퐁에 짓고 있는 자동차 공장 옆에 새 공장을 짓는다. 내년 6월께 스마트폰을 공개할 예정이다.
빈그룹의 본업은 부동산이다. 베트남에서 주택과 쇼핑몰, 리조트 등을 건설해 막대한 부를 일궜다. 팜?브엉 빈그룹의 창업주 겸 회장은 '베트남의 트럼프'로 불린다. 러시아 유학파인 팜?브엉 회장은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5년 연속 포브스 억만장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빈그룹은 공격적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제조업은 그 중 하나다. 지난 2014년 슈퍼마켓 '빈마트(VinMart)'를 출점했고, 이어 병원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는 '빈 에코(VinEco)'를 개시했다. 2016년부터 편의점 사업을 본격화했다. 빈그룹은 심지어 수도 하노이에 '빈유니(VinUni)'를 세우고 2020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베트남은 인재가 부족한 만큼 빈그룹이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직접 키우겠다는 취지다. 빈그룹 관계자는 "미국 코넬대와 펜실베니아대 등 명문대와 제휴를 맺고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제공해 베트남 대학교육에 혁신을 일으키겠다"고 밝혔다.
사업 영역이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기업 가치가 치솟고 있다. 지난해 기준 150억 달러(약 16조7000억원)로 베트남 상장 기업 가운데 1위다. 총 자산도 지난해 기준 약 90억2000만 달러(약 10조원)로 베트남 민간 기업 중 최대 규모다. 상당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제조업 특성상 가장 해볼만한 기업이 뛰어든 셈이지만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산업기반시설이 여전히 약하고 부품 협력업체는 부족하다. 당장 수만 가지 부품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할지부터 해결해야 할 처지다.
그럼에도 빈그룹은 자신감에 차 있다. 빈그룹은 2020년까지 공업대국이 되겠다고 선언한 베트남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베트남 현지 매체들은 빈그룹이 세제 등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는 만큼 자동차는 경쟁사 차량보다 10~20% 저렴할 것으로 전망하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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