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기간중 한국과 미국 북한 등 3국은 물밑에서 긴박하게 움직였다. 3국 모두 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어떤 형태로 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미국,북한과 긴밀하게 조율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3국의 목표가 서로 달랐다. 서로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청와대도 대화 주선까지는 긴박하게 움직였지만 양국의 목표까지 조율하는데는 실패했다. 결국 어렵게 마련된 북미대화가 회담직전 아슬아슬하게 불발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간의 간극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북한은 우선 미국과의 회담을 통해 미국의 의중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제재국면을 완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먼저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대화 의사를 전달하고 한국 정부의 중재로 대화 테이블에 앉으려 했던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에 비해 미국은 회담을 통해 북한에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헤더 노어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북한과 대화할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었고, 이 만남을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강조할 기회로 삼으려 했다”면서 “북한이 이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하고 비핵화 목표와 대북 압박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천안함 기념관 방문, 탈북자와의 면담 등의 행보로 북한을 자극했다. 북한은 이같은 펜스 대통령의 행보를 통해 회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고 오히려 비핵화 압박만 가중될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평행선을 달리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평화적 교섭을 중재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막판까지 치열한 물밑 조율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펜스 부통령은 평창 올림픽 참석을 위해 미국을 떠나기 전인 지난 5일 북한의 회담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8일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구체적인 회담 장소와 의제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노력으로 회담의 구체적인 방식이 미국에 전달됐고 9일 백악관 집무실 회의를 통해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회담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한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미대화가 무산됨에 따라 미국과 북한 양측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이 한국을 찾는 시기에 또 한번의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방카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만큼 펜스 부통령보다 운신의 폭이 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북미대화는 무산됐지만 양측의 의도가 확인된 만큼 양쪽 모두 상대를 이해한 상황에서 대화에 나설 수 있다. 이방카 고문과 김여정의 만남이 국제사회의 주목도가 더 높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방카의 방한에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담당자가 동행할 지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고, 이방카 역시 방한 기간 중 탈북자와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어 북미대화 성사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펜스 부통령 측이 이미 불발된 북미회담을 뒤늦게 공개하고 나선 데는 한국에서 펜스 부통령의 태도와 행보에 대한 미국 내 비판 여론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미회담 불발 내용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에 관련사실을 전달한 주인공이 바로 펜스 부통령의 보좌관들이기 때문이다.
펜스 부통령 방한 후 미국 주요 언론들은 북한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펜스 부통령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면서 북한의 김여정이 외교적으로 승리했다는 평가를 쏟아냈다. 펜스 부통령의 고지식한 태도 때문에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같은 여론의 부담을 느낀 펜스 대통령 측이 북한과의 회담이 예정됐었으나 회담을 취소한 것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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