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오른팔'로 통하는 왕치산(69) 중앙기율위 서기가 지난 5월 중순부터 40여일간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그가 20일 이상 모습을 감출때는 꼭 정부와 당에서 고위급이 비리혐의로 낙마하는 사건이 터지곤 했기 때문에 중화권 언론에선 이번에도 그가 '호랑이사냥'(고위급 비리사범 조사)에 나선 것으로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6월말 기율위 회의를 주재하며 복귀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쑨정차이 충칭 서기가 면직되고 기율위에 공식 입건됐다.
왕 서기는 그 동안에도 몇 차례 잠적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모두 거물급 관료들이 낙마했다. 지난 2015년 9~10월 약 한달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에는 쑤수린 푸젠성 서기와 저우번순 허베이성 전 서기가 부패혐의로 줄줄이 낙마했다. 지난해 4~5월 약 40일간 잠적한 뒤에는 리윈펑 장쑤성 부성장과 양전차오 안후이성 부성장 등이 부패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2013년 집권한 뒤 그의 가장 강력한 권력기반은 반(反)부패 정책이었다.
당정의 부패관료를 처벌해 아래로는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위로는 정적들을 제거하는 구실로 삼았다. 그가 공개석상에서 근엄하게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을 말할 때 막후에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른 것은 왕치산이었다. 지난 4년반동안 왕치산이 기율위를 이끌고 반부패 척결작업을 하면서 체포한 당정의 차관급 이상 관료와 국유기업 사장급은 줄잡아 150여명에 달한다.
48년생인 그는 공산당 지도부의 7상8하(七上八下·67세 이하는 유임, 68세 이상은 은퇴) 관례대로라면 이번 당대회에서 은퇴하는 게 정상이다. 이럴 경우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5자리가 새 인물로 채워지게 된다. 하지만 왕 서기가 관례를 깨고 한차례 더 유임할 거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이미 반부패와 동일어가 된 왕치산이 퇴임할 경우 반부패를 기반으로 한 시 주석의 강력한 통치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며칠 전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왕 서기가 심상찮은 내용의 기고문을 실었다.
시 주석이 기율위 순시조 업무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그리고 기율위가 시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당 지도부에 얼마나 충성했는지 등을 강조하고 19차 당대회 이후에도 순시조 반부패 업무를 강화할 거라는 내용이다. 이를 접한 당정의 고위 관료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법하다. "저승사자가 계속하려나 보다"하고 말이다.
일각에선 그가 기율위 서기가 아닌 총리직을 맡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리커창 총리가 건강 문제로 그동안 몇차례 사의를 표명했다는 것은 베이징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럼에도 시 주석 1인지배체제 부각에 따른 비판여론을 의식해 리 총리가 완전 퇴임할 가능성은 없지만, 정협 주석과 같은 명예직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대안이 바로 왕치산이다.
반부패 개혁의 수장이 되기 전까지 왕 서기의 전공은 경제금융분야였다.
2000년대 초반 후진타오 정부에서는 국무원에서 시장개방을 비롯한 경제개혁을 담당했고, 2000년대 후반 후진타오 정부에서는 국무원 부총리로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을 주도했다. 최근 4년간 중앙기율위 서기로 전국 지방정부를 샅샅이 감찰하면서 비리구조를 파악한 그가 총리를 맡는다면 지지부진한 경제구조 개혁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올 봄 공산당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던 해외 초청 인사들은 왕치산이 수많은 경제 관료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목격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왕치산의 '롱런'에 최대 장애물은 나이가 아닌 부패스캔들이 될 듯 하다. 올들어 잇따라 하이난항공과 왕 서기의 정경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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