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가 러시아의 오랜 요구사항인 시리아 반군 지원 프로그램 폐지를 전격 수용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을 놓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약 1개월 전 백악관에서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회동한 후 비밀리에 가동해 온 CIA의 시리아 반군 지원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갖기 직전에 이뤄졌다.
시리아 반군 지원 프로그램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3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시작됐다.
아사드 정권 전복을 목적으로 시리아 내 반군을 훈련하고 무기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사드 정권을 옹호하는 러시아는 미국을 향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해 왔다.
따라서 프로그램 폐지 소식을 전해 들은 미국 전·현직 관계자들은 "푸틴이 시리아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4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비난하며 시리아 공군기지를 토마호크 미사일로 공격했던 터라 갑작스런 시리아 반군 지원 중단 결정이 더욱 의아하게 받아들여진다. 당시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를 지배하는 한 평화를 찾기는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옹호했었다.
그래서 미국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에 모종의 비밀거래의 결과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리아 반군 지원 중단을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협조를 얻어내는 것,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압박에 러시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시리아 이외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을 인정받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양국 정상은 지난 7일 정상회담에서 시리아 남서부지역 휴전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을 흔들고 있는 러시아 내통 스캔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러시아가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거나, 러시아 내에서 트럼프그룹 관련 사업의 확장을 요구했다는 등의 추측도 가능하다. 이같은 의혹은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함부르크에서 정해진 정상회담 외에 별도로 1시간 가량 비밀대화를 나눈 사실이 확인되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행한 정책은 무조건 뒤집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편집증의 한 단면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중동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시리아에서 급진주의 단체들이 힘을 얻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시리아와 앙숙인 터키나 페르시아 걸프 지역의 다른 강대국이 시리아 내 급진주의 단체에 무기를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오바마 정부 국방부에서 일한 일런 골든버그 신미국안보센터 중동안보프로그램 담당자는 "반군 지원 프로그램이 궁극적으로 아사드 정권 축출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러시아와 소모적인 분쟁만 계속해 왔다"며 "현실을 인정한 결정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잇따라 의회 증언대에 선다. 쿠슈너는 오는 24일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비공개로 열리는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고, 트럼프 주니어는 26일 법사위에 출석해 증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자신과 트럼프 캠프를 둘러싼 러시아 내통 의혹과 지난 해 6월 트럼프타워에서 이뤄진 러시아 측 변호사와의 만남에 대해 집중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지난 13~1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52%는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변호사의 회동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답했으며 '적절하다'는 답변은 23%에 불과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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