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북한에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동시 제안한 것에 대해 미국 정부는 17일(현지시간)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것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런 이야기가 한국에서 나왔으니 질문은 한국에 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한과의 대화 조건에 대해 분명히 밝혔고, 그런 조건들이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과는 명백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밝혔다.
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 발사 이후 미국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것에 대해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따라 미국 현지에선 한국의 대북 대화 제의가 미국정부와의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심 우방인 중국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압박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물론 여타 국가들에게도 북한과의 거래 중단,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동참 등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의 당사자이자 핵심 동맹인 한국이 대화를 제의한 것을 놓고 '엇박자'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북한문제를 다루는 실무 부처인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도 불편한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카니타 애덤스 국무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북 대화제의 관련 질문을 받고 "보도를 통해 내용을 알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것은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며 논평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로는 미국은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라고만 밝혔다.
남북대화 제의가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 움직임과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압박을 위해 기존 제재와 새로운 제재를 완벽하게 이행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답했다.
게리 로스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대변인 역시 관련 질문에 "한국 정부에 물어보라"며 언급을 피했다.
반면 통일부는 18일 백악관의 반응에 대해 "한미 간 (인식에) 큰 차이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날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회담 제의) 발표 이전에도 외교 경로를 통해 (미국 측에) 충분한 설명이 있었고 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제안한 것도 본격적 대화 조건이 마련됐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우리 정부가 북측에 제의한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은 '정식 대화'라기 보다는 초기 단계의 접촉 수준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제의한 회담이 북한과의) 본격 대화는 아니고 남북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초기적 단계의 접촉이라고 어제 설명했다"면서 "앞으로도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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