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첫 100일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보호무역주의와 반이민 정책을 고수한다면 트럼프가 바라는 연 3~4% 성장은 요원할 뿐이다."
'미국판 다보스포럼'으로 꼽히는 밀컨글로벌콘퍼런스에 참석한 글로벌 석학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좌충우돌'식 리더십과 고립주의 정책을 집중 질타했다. 설령 대규모 감세와 규제완화,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앞세운 '트럼프노믹스'가 궤도에 오른다 하더라도 자유무역과 이민의 문을 닫는다면 트럼프가 원하는 쾌속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와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는 4월 30일(현지시간) 미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호텔에서 개막된 밀컨글로벌콘퍼런스에서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첫 100일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서 2011년 11월부터 2013년 8월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역임한 크루거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100일은 혼돈의 연속이었다"며 "트럼프 정책의 입법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보여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진전은 환경오염 논란으로 중단됐던 대형 송유관 건설사업을 재개한 것과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규제를 덜어준 '환경규제 완화'라고 꼬집었다.
크루거 교수는 또 트럼프 행정부의 상당수 요직들이 여전히 공석이어서 국정 과제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없는 점을 거론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상원 인준이 필요한 정부 요직 556석 중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지명한 인사는 지난달 27일 기준으로 66명, 인준이 완료된 자리는 26명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190명을 지명해 69명을, 빌 클린턴 대통령은 176명을 지명해 49명의 인준을 획득했다. 트럼프를 포함한 최근 5명의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저조한 인준 속도다.
크루거 교수는 민주당과의 첨예한 갈등 속에 의회 통과가 쉽지 않은 '오바마케어' 폐기나 세제개편안 보다는 미국의 낙후된 인프라스트럭처를 개선하는 사업에 초기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그는 "민주·공화 양당의 컨센서스가 있는 인프라 투자에 우선 초점을 맞추면 좋을 것"이라며 "세제개혁 중 법인세율을 낮추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크루거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적인 보호무역과 반이민 정책을 고집하는 한 3~4%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에 퍼지고 있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제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아이켄그린 교수는 "미국 증시는 트럼프노믹스 기대감에 젖어 너무 낙관적이었고 과잉 반응했다"고 운을 뗀 뒤 "3~4% 성장 목표는 터무니없는 숫자"라고 평가 절하했다. 그는 "이미 완전고용 수준에 근접한 미국 경제가 더 빠른 성장을 거둘 수 있는 길은 생산성 제고"라며 "이는 대통령이 통제할 수 있는게 아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을 흔들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약달러 선호 발언'도 취임 100일의 실책으로 꼽았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통화긴축을 추진한 미 연방준비제도나 통화절하를 꾀한 다른 나라를 강달러의 주범으로 몰고 싶겠지만 강달러 유발의 장본인은 통상 압박이나 경기 부양책을 시도하는 트럼프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감세안에 대해 "다른 재정 확충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개인소득세나 법인세 등 감세 규모에 제약이 따를 것"이라며 "재정적자나 큰 정부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이 1조달러 인프라 투자에 태생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눈에 띄는 프로젝트를 원하지만 재정 건전성 문제를 외면해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크루거 교수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보호무역주의에 깊은 경계감을 피력한 아이켄그린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노동인구에 대한 교육과 트레이닝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의 질 향상은 생산성 증대를 위한 중대 요소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취임 이후 99일 중 91일 동안 적어도 한번 이상의 사실과 다른 주장이나 거짓을 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첫 90일 동안 28개 법안에 서명하고 대법관 지명자도 상원 인준을 받았지만 100일 이내에 통과시키려고 했던 10개 주요 법안 중 하나도 서명하지 못했다.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
[로스앤젤레스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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