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한 미군'과 '반이민정책'에 재정을 집중적으로 쏟아붓는 예산안을 마련했다. 멕시코와 국경장벽 건설엔 4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16일(현지시간) '아메리카 퍼스트'라고 이름붙인 이같은 내용의 1조1500억 달러 규모 내년도 예산안을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새 예산안은 국방예산이 540억 달러 편성돼 전년보다 10% 늘어났다. 국방예산의 대부분은 군수물자 구매와 장비 현대화, 병력 증원, 사이버전력 강화 등에 쓰일 계획이다. 특히 현재 272척인 군함을 350척까지 늘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해군 함정 건조에 필요한 예산도 포함됐다.
특히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예산으로 15억 달러를 배정했고 추후 26억 달러를 추가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장벽 건설 비용을 멕시코가 내게 하겠다고 공언해 온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정치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 불법 이주민 단속과 추방을 위해 15억 달러를 배정했으며 국경순찰대원 500명과 이민단속국 요원 1000명을 추가 고용하기 위해 3억1400만달러를 편성했다.
반면 환경보호청 예산은 26억 달러로 전년보다 31% 삭감됐다. 이로 인해 50개 이상의 환경보호 내지 기후변화대책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3000명 이상 직원이 해고될 것으로 보인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환경청 예산은 대부분 쓸모없는 것"이라며 "대폭 삭감해 정부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국무부 예산은 전년보다 28% 줄어든 100억 달러가 편성됐다. 이로 인해 유엔 분담금과 대외원조기금 등이 대폭 줄어들게 됐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이와 관련해 "정부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라며 예산삭감 수용 의사를 밝혔다.
농무부 예산도 전년 대비 21% 감소한 47억 달러로 예산 삭감 비율이 높은 부처 중 한 곳이다.
뿐만 아니라 학술연구, 문화·예술 분야 지원 예산과 박물관 도서관 지원 예산, 저소득층 난방 지원 예산 등이 대폭 줄어들었다. 매년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배정받아 온 국립예술기금(NEA)과 국립인문학기금(NEH)은 지원 예산이 통째로 삭제됐다. 공영라디오 NPR과 공영TV PBS에 대한 자금지원을 담당하는 공영방송공사(CPB) 예산도 삭감됐다.
트럼프정부가 마련한 첫 예산안은 사회 곳곳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논란을 예고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아메리카 퍼스트' 예산안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외교예산과 환경예산 등을 삭감한 것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예산안은 연방정부를 해체하겠다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오히려 국방예산 증액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공화당의 거물급 인사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국방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이번 예산안이 상원을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스테판 두자릭 대변인을 통해 "갑작스러운 분담금 삭감은 유엔 활동의 왜곡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유엔의 장기적 개혁 노력
트럼프정부가 국무부 예산 28%를 삭감하는 과정에서 유엔에 대한 미국의 분담금이 줄어들고 유엔 평화유지 비용에 대해서도 부담금을 축소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미국은 유엔의 연간 예산인 54억 달러 중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22%를 부담하고 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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