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외교·안보 핵심인사가 러시아와 내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러 외교정책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고 중동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의도였으나, 이제는 친러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러시아와 거리를 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시대를 맞아 훈풍을 기대했던 미·러 관계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불투명해졌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해 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러시아 대선개입 의혹을 근거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던 날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세르게이 키슬략 주미 러시아대사와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고강도 제재 발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반발은 커녕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 의아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플린 전 보좌관과 제재해제를 논의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던 플린 전 보좌관과 러시아 내통의 배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스스로 친러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TV 인터뷰에서 "푸틴을 존경한다"고 했던 발언, 푸틴 대통령의 친구인 렉스 틸러슨 전 엑손모빌 CEO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한 사실 등을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 성향에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푸틴 대통령과의 '브로맨스'를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에 대한 태도 역시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했다"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문제 삼지 않았다.
러시아는 미군에 대항하는 무력시위를 전개하며 트럼프 외교에 대항했다. 복수의 러시아 군용기가 흑해를 순찰하는 미 해군 구축함 주위를 근접비행했으며, 러시아 정찰선이 대서양 해상에서 정찰활동을 벌였다. 또 러시아 내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순항 미사일을 배치함으로써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와 관련해 외교가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협력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 등 중동사태를 해결하려는 전략 역시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 중부사령부 방문 등의 기회에 나토와의 동맹관계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기간 내내 나토 동맹을 "낡은 동맹"이라고 비판하고, 나토 회원국이라도 미국이 공동방위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고 위협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태도변화를 보인 것이다. 나토는 미국이 서유럽 국가의 방위를 지원해 러시아에 맞서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서 "나토 회원국들은 연말까지 방위비를 증액해야 한다"며 "방위비를 증액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나토에 대한 방위공약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나토 회원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한 것이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면 공평한 방위비 분담금을 산정함으로써 미국이 나토 지원을 확대할 명분을 쌓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매티스 장관은 회의에서 "나토는 미국과 유럽간 대서양 안보동맹의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매티스 장관의 발언에 대해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는 정당하다"면서 "방위비 분담은 내 업무의 최우선순위"라고 화답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장원주 기자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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