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또 다시 강달러 견제 발언을 꺼내들면서 글로벌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환율 관련 개입은 최근 보름새 벌써 두번째다. 외환 딜러들은 트럼프발 변동성이 올해 외환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라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반이민정책을 속도감 있게 전개해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일본, 독일 등 대미 무역흑자국들을 상대로 선전포고에 가까운 '환율 조작론'을 제기하면서 환율전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보름 전과 달리 이번에는 공격 상대를 정확히 지목했다. 31일 트럼프는 중국과 일본을 콕 찍어 환율조작을 맹비난했다. 그의 최측근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같은날 유로화 절하를 문제 삼으며 독일을 공격했다. 한국에 대한 발언은 없었지만 언제 한국에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진게 사실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내정자가 지난 19일 의회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장기적으로 달러 강세는 중요하다"는 발언으로 트럼프와 미묘한 의견차를 드러냈다가 24일 의회 서면 답변에서 "지나친 강달러는 미 경제에 단기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트럼프 발언과 보조를 맞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월가 금융기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달러 강세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시장에 명확히 던진 것"이라며 "문제는 트럼프의 의도와 다르게 미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규제개혁과 감세, 재정 확대는 미 경제의 성장을 자극해 달러 강세를 부추길 수 있고 대대적인 보호무역 기조도 강달러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더구나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올해만 3번의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상태다. 모두 강달러를 초래할 재료들이다. 지난해 말 상당수 외환 전문가들은 유로화와 달러화의 가치가 동등해지는 '유로·달러 패리티'가 2017년 중 일어날 수 있다면서 달러 강세를 점쳤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내각이 계속해서 달러 강세를 저지하려는 인위적 개입에 나설 경우 시장 왜곡의 충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의 돌발 발언에 달러가치는 약 세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6개 주요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9.5까지 급락해 100선이 무너졌다. 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값은 112엔대까지 급등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 강세 덕분에 118엔대까지 급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엔화값이 다시 강세로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로화 당 달러값은 전날 1.0695달러에서 1.0798달러로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조작 발언이 알려진 이후 일본은 초비상이 걸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일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의 엔저 발언이 일본은행(BOJ)의 금융완화를 지목한 것이라면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 시나리오까지 영향을 줄 듯하다"고 우려했다.
사실 시장에서는 아베 2차 정권이 출범한 이듬해인 2013년 4월 본격 시작된 BOJ의 양적완화는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용인 아래 이뤄졌다는 분석이 많았다. BOJ의 양적완화로 엔저는 가속화됐고, 자동차 전자 등 수출기업의 이익이 급등하면서 아베노믹스는 순풍을 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견제는 아베노믹스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정부 대변인)은 이날 "(환율조작 발언은) 전혀 맞지 않다"며 "금융완화는 국내 물가안정 목표를 위한 것으로 엔저 유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에 이어 환율시장까지 거론하고 나서자 아베 정권은 긴장한 가운데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오는 10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 내 수십만명 고
중국도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 갈등이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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