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통화긴축 기조는 세계 자금흐름의 대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부풀어오르고 달러 강세가 확산되면 미국 등 선진국으로 돈이 빨려들어가는 ‘자금 블랙홀’ 현상이 지속될 공산이 크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 이후 이같은 ‘머니 무브’가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에 따르면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 이후 한 달간(11월 8일∼12월 7일) 신흥국 주식펀드와 채권펀드에서 총 210억달러(약 25조원) 이상이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시아의 증권자금 순유출 규모는 2013년 6월 ‘테이퍼 탠트럼’(긴축발작) 이후 최대 수준이었다. 인도, 태국 등 신흥 아시아와 남미에서 빠져나간 돈은 대부분 미국 주식시장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월가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속도가 점진적이라고 해도 경제가 취약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융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경제 전문가 62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2017년 12월 기준금리가 1.26%, 2018년 말에는 2.0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강달러는 신흥국 통화 약세를 뜻한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신흥국 통화 약세로 인한 투자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금을 일시에 빼내면 신흥국 주식·채권시장은 충격에 시달리게 된다. 최근 멕시코는 자국 통화의 급락세를 저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이후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하고 있지만 미국의 금리상승세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HSBC는 “중국 위안화 약세가 지속되면 중국 정부가 미국 국채 등 미 달러화 자산의 대규모 매도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미 국채를 매도하고 위안화 표시 자산을 사들여 위안화 가치의 추락을 저지하려고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위안화 가치의 변동성 확대는 한국에도 민감한 문제다. 모건스탠리는 “한국 원화가 위안화와 동조화돼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시장 참가자들이 거래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원화를 매도해 중국 위안화 약세에 대비한 헤지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원화가 큰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통화긴축은 유럽과 일본의 중앙은행들에게 적잖은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달 8일 통화정책회의에서 내년 4월부터 자산매입 규모를 기존 800억유로에서 600억유로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매입 기간을 내년 12월까지 9개월 연장했지만 이같은 자산 매입규모 축소 조치가 ‘테이퍼링’의 신호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트럼프발 인플레이션’을 얼마나 용인할 것인지도 시장의 관심이다. 월가에선 트럼프 정부의 재정확대, 보호무역, 이민제한 등 경제정책 조합이 내년 하반기부터 성장과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보호무역 정책은 관세율 증가로 수입물가 상승세를 자극하게 된다.
최근 불거진 산유국들의 감산 결정도 한 몫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유가가 단기간에 100달러 수준으로 치솟을 경우 내년 중반 소비자물가가 3%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2%)를 넘어서는 ‘인플레이션 오버슈팅’ 상황이 일시적으로 오더라도 연준이 이를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가 과열에 민감하게 반응해 금리인상 속도를 높이면 달러 강세를 더욱 부추겨 미국기업 수출에 부담을 주고 내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트럼프 재정확대 카드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이어지면서 13일(현지시간) 뉴욕 3대 증시는 또 한번 사상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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