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블랙스톤 본사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지난 9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345 파크애비뉴’ 빌딩 블랙스톤 본사. 44층 집무실에서 만난 ‘사모펀드업계 제왕’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69)은 무척 바쁜 연말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서류 파일을 들고 다급하게 올라온 보고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지만 매일경제와의 예정된 인터뷰를 소화하기 위해 기자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정책을 조언할 ‘대통령전략정책포럼’ 위원장에 최근 임명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경제·금융 가정교사’로 선임된 그의 자문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정책포럼에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 등 미 월가와 재계의 최고 지성 16인이 포함돼 있다. 포럼 자문단은 내년 2월 초 백악관에서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기자는 ‘월가의 거물’ 슈워츠먼 회장이 트럼프 당선인을 어떻게 평가하고, 그와 어떤 경제 비전을 공유할지 무척 궁금했다. 슈워츠먼 회장은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태도를 바꿀 줄 아는 트럼프 당선인의 유연성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본인이 강력 부인해왔던 기후변화에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대선 유세 중 밝힌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ACA) 폐지와 물고문 부활, 클린턴 이메일 재수사 등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슈워츠먼 회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사회 곳곳의 꽉 막힌 규제를 풀고 ‘30년 만의 대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는 예상보다 빠른 금리 상승과 성장세를 경험할 것이며 금융 르네상스의 부활을 기대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슈워츠먼 회장과의 일문·일답.
-전략정책포럼 위원장에 임명된걸 축하한다. 내년 2월 트럼프 대통령과 첫 회의를 갖는데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가.
▶트럼프 당선인이 원하는 건 각 방면의 최고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그가 몰랐던 지식과 경험을 배우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의 비즈니스맨인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분야를 다 알 수는 없다. 그는 ‘열린 귀’를 갖고 있다.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고 대화하면서 뭔가를 배우는 학습능력이 탁월하다. 이번 전략정책포럼에 경제·금융권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뭐가 될거라고 보는가.
▶각 산업의 규제기구 개편을 포함해 너무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미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한 국민들이 트럼프 당선인에게 ‘많은 변화를 꾀하라’고 표로 승인해준 것이다. 향후 눈여겨볼 변화는 조세개혁이다.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이 눈에 띄게 떨어질 것이며 특히 법인세 인하는 미국을 훨씬 경쟁력있게 만들 조치다. 해외에 있는 2조달러의 미국기업 자금을 본국으로 귀환시키기 위해 한시적으로 낮은 세율(트럼프 캠프는 10%를 제시)을 적용하겠다는 방침도 미국 재건의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감세 정책은 투자를 자극할게 분명하다.
트럼프 정부가 감세와 규제완화 등의 ‘프로비즈니스’(pro-business) 조치를 단행할 때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더욱 오르고 더 높은 금리와 인플레이션을 경험할 공산이 크다. 이는 미국 경제 사이클에서 매우 흥분되고 특별한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이와 같은 대변화는 대개 한 세대(30년을 뜻함)에 한번 꼴로 일어난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 활성화 정책에 대해 나는 꽤 낙관적이다.
-대변화의 시기가 오는건가.
▶그렇다. 대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미국인의 72%는 미국이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의 60%는 지난 2000년 보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었다. 교육 수준도 최근 15년간 더 떨어졌다. 이게 미국의 현주소이고 많은 미국인들이 좌절하고 있다. 많은 국민의 실패는 미국 정부의 실패를 뜻하는게 아닌가. 새 정부는 많은 분야의 개혁을 추진할 것이고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법인세율을 35%에서 15%로 낮추겠다고 하는데 미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가 불가피한게 아닌지.
▶물론 추가적인 경제성장 없이 법인세를 깎는다면 세수가 줄어들고 재정적자가 늘어난다. 트럼프 정부 하에서 높은 금리와 높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는 이유는 종전보다 재정적자 규모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법인세율이 15%로 낮아질지는 봐야 한다. 대통령이 정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의회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상당수 기업들은 35% 법인세가 아니라 각종 공제 혜택을 통해 실제로는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이를 보다 낮게 현실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2010년 도입된 도드-프랭크법을 폐기하는건 잘하는건가. 이 법의 문제는 뭐라고 보는가.
▶현재 미국의 금융규제는 안전과 건전성에 너무 치중해 있다. 또 다른 금융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부실대출을 줄이기 위해 금융권 대출을 옥죄는 규제가 생겨났다. 미 대통령선거 때 둘 중 한명(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칭)은 월가의 금융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경제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없다. 미국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미국인 60%의 가처분 소득이 쪼그라드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는 더 성장해야 하고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런 변화의 갈망을 영리하게 간파해냈다. 도드-프랭크법은 완전 폐기되지 않을 것이다. 이 법을 만드는데 기여한 민주당이 이를 없애는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도드-프랭크법에 담겨 있는 과도한 규제 조항은 축소·보완하는게 맞다.
-사람들은 ‘좋은 트럼프’와 ‘나쁜 트럼프’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규제완화, 감세, 재정확대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반이민, 보호무역은 트럼프의 부정적 면이라는 지적이 많다.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면 어떻게 조언할텐가.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보다는 ‘무엇을 먼저 하라’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거나 지켜보면서 느낀게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많은 사안을 배우려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그가 자주 말을 바꾼다’고 지적하는데 나쁜게 아니다. 생각을 바꾸는 이유는 그가 이전에 몰랐던걸 배우면서 다른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일전에 그가 이렇게 얘기하는걸 듣고 깜짝 놀랐다. “알겠습니다. 그건 내가 틀렸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바꿉시다.” 이게 다른 정치인이나 최고경영자와 다른 점이다. 그가 이전에 했던 말이 잘못된 방향이었다는걸 깨닫는 순간 망설임없이 방향타를 틀 수 있는 것, 그게 우리에겐 중요하다. 그가 ‘옳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증거다. 대통령 당선인은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옳은 방향으로 변화하는전 좋지만 정책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는데.
▶그가 지금까지 얘기한 공약들은 구체화되지 않은 하나의 정책 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바뀔 여지가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계속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고 옳은 선택을 하려고 절충점을 찾아나갈 것이다. 당선인의 시각이 고정돼 있지 않고 유연하다는게 다행 아닌가.
-트럼프 당선 직후 미국 증시가 많이 올랐다.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이 사상 최고치를 여러 차례 이끌었는데 내년 미국 증시도 계속 올라갈까.
▶내년 증시의 향방을 알 수 있다는건 불가능하다. 나는 전망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종전과는 다른 경제를 만들겠구나 하는 시장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친기업, 친성장, 친일자리’ 정책에 방점을 두고 있는게 증시의 빠른 상승세를 이끌어냈다.
-내년 미국 경제는 어떻게 보는가. 트럼프 집권기간 중 3~4% 경제 성장이 가능할지.
▶트럼프 정부 첫해의 성적표가 어떻게 될지 예단하는건 어렵다. 단 2~3일 만에 미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는 없다. 새 정부가 구상하는 여러 방면의 규제 완화와 감세 등 새로운 조치를 이행하는데는 최소 1년 이상이 걸릴거다. 아마 2년에서 그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는게 맞다.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경제개혁 조치를 좀 더 긴 안목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의 3.5~4% 성장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내년에 사업과 투자의 기회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내 생각에 거의 모든 보트(boat)가 떠오를 것이다. 대다수 분야에서 성장세가 기대된다는 뜻이다. 특히 금융업은 규제 완화책이 가시화되면 다른 분야보다 더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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