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화가 유로화 가치와 같아지는 ‘유로-달러 1대1 패러티’(parity)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슈퍼달러’의 귀환이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1월 하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역사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나타난 달러 강세 현상과 흡사한 패턴이다.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가치 급락과 외국인 자본 유출 우려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작년엔 시장의 예상과 달리 달러화는 이후 약보합세를 보였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다음달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는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재정확대 정책이 강달러에 기름을 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멕시코,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통화가치가 미 달러 대비 폭락하면서 트럼프발 금융 불안에 휘청이고 있다.
유로당 달러 가치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뉴욕외환시장에서 1.0591달러를 나타냈고 21일 오전 아시아 외환시장에서도 1.059달러선에서 거래됐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지난 2주간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4% 추락했다.
시티그룹은 패리티를 넘어 역전까지도 가능하다고 봤다. 시티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트럼프 당선 여파로 유로-달러 전망이 180도 달라졌다”면서 “향후 6~12개월 안에 유로당 98센트까지 갈 수 있다”고 밝혔다. 아드난 아칸트 피셔프랜시스트리즈&왓츠 통화 담당 헤드도 패러티가 조만간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ECB는 유럽의 미약한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당분간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이어갈 가능성이 큰데다 유럽 주요국들의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예정돼 있어 통화 긴축에 나설 처지가 더욱 아니다. 당장 내달 4일 이탈리아가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고 투표가 부결돼 마테오 렌치 총리의 사임으로 이어질 경우 정국이 일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오스트리아도 같은 날 대통령 재선거를 실시한다.
이어 내년에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가 대선과 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치 이벤트가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에 따른 논의가 본격화하면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이처럼 불충분한 경제 성장과 정치 불확실성이 유로화 가치를 짓누를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마크 챈들러 브라운브라더스해리먼 스트래티지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유로화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1999년 출범한 유로화는 2000년 유로당 미화 83센트까지 떨어졌다가 2002년 들어 미 달러 보다 높은 가치를 형성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크게 흔들렸던 2008년에는 유로당 1.6달러까지 유로화 가치가 치솟기도 했다.
강달러 기조가 유지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최근 경제전문지인 비지니스 인사이더는 “트럼프의 인프라 1조달러 투자 등 경제공약 이행시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역시 지난주 의회에서 질의응답을 하며 트럼프 공약을 이행할 경우에 대해 “재정적자가 가속화될 염려가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바 있다. 급속히 가치가 높아지는 달러화에 대한 불안감이 상존한다는 뜻이다.
신흥국 통화 가치는 연일 급락세를 연출하고 있다. 미 대선일 이후 멕시코 페소화는 달러화 대비 11% 급락했고 브라질 헤알화는 6.3% 떨어졌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급기야 자국 통화가치 하락과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극약처방을 최근 단행했다.
중국 위안화도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 외환교역센터는 21일 위안화 가치를 전 거래일보다 0.27% 낮춘 달러당 6.8985 위안으로 고시했다. 2주 전만 해도 달러당 6.7위안대이던 위안화환율이 6.9위안대에 근접한 것이다. 사상 최장 기간인 12일 연속으로 고시가격이 떨어진 결과 현재 위안화 가치는 2008년 6월 이후 8년 5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역외 시장에서 위안화 가치는 지난 18일(미국시간) 이미 달러당 6.9위안대로 떨어졌다. 한국 중국 일본의 통화가치가 모두 일제히 하락하면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중국이 내년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의 환율 공세에 대비해 위안화를 절하하고 있다는 해석을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