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사실상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회담은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오후 5시(일본시간 18일 오전 7시)에 시작해 예정됐던 시간을 훌쩍 넘기며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 직후 전화통화에서 회담을 제안하고, 뉴욕까지 날아간 것은 그만큼 트럼프 당선인과의 개인적인 관계구축과 현안에 대한 설득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아베 총리는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흉금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얘기를 나눴다. 함께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또 “트럼프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개인적인 신뢰구축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회담이라는 자평이 나왔다.
회담 내용과 관련해 아베 총리는 “정식 취임 전 비공식 회담이라 내용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삼가하겠다”면서도 “나의 기본적인 생각에 대해 얘기했다. 여러 과제에 대해 얘기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기간 내내 공언해왔던 주일 미군 주둔비 증액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등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며 설득에 나섰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주일 미군 주둔비용의 100%를 일본이 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동맹국 가운데 일본이 가장 많은 주둔비용을 내고 있다”고 언급하며 설득한 것으로 관측된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 주둔중인 미군은 일본방어뿐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상 필요한 전력인 만큼 비용을 적절히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후 TPP 폐지 공약에 대해서도 만일 TPP가 폐지될 경우 동아시아 무역지형이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으로 넘어갈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설득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북핵·미사일 등 동아시아의 다양한 안보현안과 환율 관련 문제와 관련해서도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일본은 트럼프 취임 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열어 공식적인 관계구축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회담은 트럼프타워 내 당선인 거주지에서 진행됐으며,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가 회담에 배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모습도 보였다. 회담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인수위 외교안보라인이 배석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편 아베 총리는 골프광인 트럼프 당선인에게 골프 클럽을 선물로 건넸고, 공교롭게 트럼프 당선인도 셔츠 등 골프용품을 답례로 전달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골프광으로 유명하며, 아베 총리도 휴가 중에는 지인들과 골프 라운드를 즐기는 등 두 사람 모두 골프 애호가다. 골프라는 공통 취미가 두 사람의 개인적 신뢰관계 구축에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이 모두 골프용품을 선물로 전달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일본 정부 관계자는 밝혔다. 아베 총리는 2013년 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처음 만났을 때도 골프 클럽을 선물로 줬었다.
회담 후 트럼프 당선인은 트럼프타워 아래까지 내려와 배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뉴욕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이번 회담은 구체적인 내용보다 개인적인 신뢰관계 구축이 포인트”라고 얘기해왔는데, 외견상 이런 분위기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인이 정식 취임도 하기 전에 외국 정상과 만남을 갖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여전히 현직에 있는 상황에서 자칫 외교 결례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
아베 총리는 당초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고 힐러리 진영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뉴욕행을 준비 중이었으나 트럼프 당선 직후 축하전화에서 뉴욕행 계획을 알리며 만남을 제안해 극적인 회동이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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