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후보를 확정하기 위해 7월말 열리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개된 민주당 대선정책 기조 초안은 종전보다 한층 더 강화된 보호무역 기조를 반영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新)고립주의와 미국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반감, 그리고 양극화로 심화된 노동자 계층의 불만 등과 무관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의 모든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내지 폐기를 주장하는 극단적 보호무역주의에 불을 지피는 상황에서 민주당마저 무역정책에서 한걸음 더 ‘좌향좌’하는 선택을 하면서 미국내에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정책기조 초안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특정 무역협정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았지만 “지난 30여년간 미국은 애초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많은 무역협정을 체결했다”고 적시함으로써 대다수 무역협정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각종 무역협정들이 미국 노동자와 환경을 보호하는 데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자유무역을 통해 교역이 늘어난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대기업 이익에만 부합했을 뿐 일자리를 늘리거나 근로자 임금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는 보호무역주의자들이 주장해 온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제동을 걸었다. “당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완곡한 표현을 집어넣어 TPP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밝히는 방식으로 현직 대통령이 추진하는 TPP 정책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인것이다. 특히 TPP와 관련, 노동자 권익과 환경 보호 뿐만 아니라 ‘긴급하게 필요한 처방약에 대한 접근을 약화시켜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는데 이는 신약 특허권 보호기간을 8년으로 합의한 것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자국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진단이다.
민주당의 보호무역정책은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크다. 미국은 무역 외에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에서 중국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있다. 정책기조 초안에는 중국산 저가 제품의 미국 시장 잠식에 대한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중국 정부의 불법 보조금 지급과 인위적인 통화가치 평가 절하 등도 문제삼았다. 향후 교역을 둘러싸고 중국과 심각한 마찰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정책기조 초안에 중국만을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대해 많은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한국 일본 독일까지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말 중국과 함께 한국, 일본, 독일, 대만 5개국을 환율조작 여부와 관련해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한 바 있다.
민주당이 자유무역에 급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당장 4개월 앞으로 다가 온 대선을 의식한 측면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신(新)고립주의 영향이도 지 않다. 계속되는 테러로 이민자와 외국에 대한 반감이 자유무역에 대한 감정적인 거부감을 초래하고 있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인들의 감정과도 유사한 부분이다.
미국 내 양극화 현상도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경제지표상으로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와 대조적이다. 저변에 깔린 이같은 불만이 정치권으로 하여금 보호무역을 자극한 것이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경선 후보 영향도 적지 않다. 자유무역으로 저가의 외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을 장악해 미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샌더스 주장에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은 열광했다. 미국 중북부 쇠락한 공업지역을 뜻하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이 샌더스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이유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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