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치닫는 영국 '브렉시트'… '브루투스처럼' 배신, 보리스 존슨·고브에 세계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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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스 존슨/사진=연합뉴스 |
유럽연합(EU) 잔류·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승리로 이끈 영국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EU탈퇴) 진영의 두 거물이 30일(현지시간) 영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보수당 대표인 데이비드 캐머런(50) 총리가 10월까지 물러나겠다고 밝힌 만큼 차기 보수당 대표는 영국 총리로서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을 벌일 영국 호의 새 '선장'이 됩니다.
하지만 브렉시트를 주도한 보리스 존슨(52) 전 런던시장이 측근 마이클 고브(48) 법무장관과의 내분 끝에 보수당 대표경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가장 지지율이 높은 EU 잔류진영의 테리사 메이(59) 내무장관이 차기 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브렉시트 진영 대신 브렉시트를 반대하던 진영이 차기 영국 총리를 맡아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 형국입니다.
보수당 차기 대표 후보 마감일인 이날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동료와 논의했고, 의회 여건들을 고려해 내가 총리가 될 사람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또 "차기 정부가 국민투표로 나온 위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을 확실히 하도록 하는 데 최선의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내 역할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의 기자회견은 출마 선언보다는 EU 탈퇴 협상에 관해 내놓을 발언들에 더 관심이 쏠렸다. 그가 유력한 후보였기 때문입니다.
존슨 전 시장은 지난 24일 국민투표 결과 발표에 이어 캐머런이 사임을 전격 발표할 때만 해도 차기 총리 '0순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존슨의 기자회견은 마이클 고브 법무 장관이 경선 참여를 발표한 지 몇 시간 만에 나왔습니다. 고브 장관은 탈퇴파 캠프의 좌장인 존슨 전 시장의 최측근으로 공인돼왔습니다.
고브 장관은 "EU 탈퇴가 더 나은 미래를 줄 것이라고 주장해온 존슨 뒤에서 팀을 이뤄 돕기를 원했지만 그가 리더십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출마의 변을 밝혔습니다.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보리스가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팀을 단결시키고 당과 나라를 이끌 능력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동료 의원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후 전날 저녁에서야 고심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존슨을 배신했다는 비난에 대해 동료 의원들에게 존슨이 적임이라고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총리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던 말을 번복하고 출마를 전격 선언했습니다. EU 탈퇴 진영을 대표하는 후보가 돌연 바뀐 것입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고브 장관이 존슨 전 시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했습니다. 두 사람 간 연대의 움직임은 고브 장관 부인이 실수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는 "보리스로부터 구체적으로 (자리를) 받지 못하면 당신의 지지를 보장해주지 말아야 한다" "보수당원들이 반드시 존슨 전 시장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보하지 말고 고집을 부려라"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존슨 캠프의 전략가 린튼 크로스비는 이날 존슨의 출마 선언을 마지막 정리하던 오전 9시께 "출마한다"는 고브 장관의 전화를 받고서야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영국 국내에서는 이들이 빚어내는 무책임한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으며 브렉시트 진영의 내홍도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일간 가디언은 "수많은 존슨 지지자들이 고브가 배반을 했다면서 그를 비난했다"고 전했습니다. 나이절 에번스 의원은 가디언에 고브가 "보리스를 정면에서 찔렀다"고 표현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존슨 지지 의원은 "고브보다는 (캄보디아 전 독재자) 폴 포트에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EU 잔류를 지지한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으로 마음을 돌리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습니다.
존슨은 경선 불출마 선언에서 "역사의 파도에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운명을 항해할 때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줄리어스 시저'의 브루투스 대사를 인용한 것으로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존슨 시장의 불출마를 둘러싼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보수당 원로 헤셀틴 경은 존슨 전 시장이 "보수당을 찢어놨다"며 책임 추궁이 있어야만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국민투표 이후 존슨 전 시장 등 탈퇴 진영은 투표 운동 기간 내놨던 약속들을 뒤집거나 톤을 낮추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또 보수당 안에서 '보리스 아니면 누구나'라는 기류가 확산되는 등 존슨 전 시장에 대한 반발 기류가 퍼지기도 했습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고브의 막판 출마를 "뻐꾸기 둥지(cuckoo nest·뻐꾸기가 딴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새끼치기를 하는 것) 음모"에 비유했습니다.
존슨 역시 배신의 전력이 있습니다. 투표 운동 시작 전 존슨은 유럽 잔류 지지자였다는 게 비밀이 아니었고, 캐머런 총리는 그의 EU 잔류 지지를 기대했었지만, 그가 고브의 설득에 넘어가 캐머런을 저버리고 EU탈퇴 진영에 섰다는 것이 텔레그래프 등 영국언론이 전하는 정설입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존슨은 스스로 캐머런에게 브루투스 같은 역할을 했고, 곧바로 고브에 의해 카이사르가 됐다"며 "'배신을 당한 배신자'는 지금 화가 났다기 보다 암담해하는거 같습니다. 이제 자신이 누구를 지지할지에 대해 침묵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캐머런 총리, 존슨 전 시장, 고브 장관은 영국 명문대 옥스퍼드 동문으로 서로 친구처럼 지내왔습니다.
또 브렉시트 투표 이후에 존슨과 고브가 만약 승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를 못봤으며,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벌어진 배신극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승자는
메이 장관은 장관 4명, 차관 5명, 하원의원 60명의 지지를 확보한 데 이어 대중지 데일리 메일의 지지까지 끌어냈습니다. 여론조사, 베팅업체 분석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