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영국 남부 대도시 브라이턴에서 이스트본으로 넘어가는 A27번 국도. 은퇴자 밀집지역으로 브렉시트(영국 유럽연합(EU) 탈퇴)정서가 영국내에서 가장 강한 지역 중 한곳인 이스트본은 정적에 잠겨있었다.
지난 16일 조 콕스 영국 하원의원이 피살되기전만해도 이 지역 도로변은 “(EU)탈퇴에 표를 던져라”(Vote Leave)는 표지판과 함께 EU잔류파를 겨냥한 과격한 문구들이 담긴 플래카드와 표지판이 도로를 점령했었다. 그러나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때는 이같은 반EU정서를 부추기는 과격한 문구가 모두 치워진 상태였다. 콕스 하원의원 피살후 브렉시트 캠페인이 전면 중단된데다 과도한 찬반 논란이 영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자성속에 브렉시트와 관련된 플랭카드와 표지판들을 자발적으로 다 정리해버렸다는 설명이었다.
EU탈퇴 지지율이 70%에 육박해 브렉시트 진영의 최대 텃밭으로 꼽히는 영국 중부 피터보로우. 이곳 주택가에서 조차 콕스 의원을 추모하는 꽃들이 교회앞에 놓여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콕스 의원 사망후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면서 이민자에 대한 반감에 호소하던 EU탈퇴 진영의 주장이 점차 힘을 잃는 모습이다. 특히 범인인 토마스 메이어가 나치 규율를 담은 책을 구매하거나, 친(親)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성향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등 극우 테러리즘과 연결돼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치즘에 대한 역사적 반감까지 겹쳐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피터보로우 시내에서 만난 니콜라 파이퍼(72·연금생활자)씨는 “나는 이번 사건을 보고 이민자들보다 우리 주변에 이웃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 토마스(살인범)같은 백인 영국인이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며 “적어도 내가 아는 동유럽 이민자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마구 총으로 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브라이턴에서 만난 대런 로슨(28·대학원생)씨도 “콕스 의원 사망후 민족주의적인 선전행위가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민심이 변화하면서 여론조사서도 브렉시트 지지파보다 반대파가 더 많아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영국 선데이메일이 여론조사업체 서베이션을 통해 지난 17~18일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한 결과, 영국의 EU잔류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45%로 EU탈퇴 지지(42%)보다 3% 포인트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스트본·피터보로우(영국) = 신현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