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밤 10시(현지시간)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운명을 가를 브렉시트 투표가 마침내 종료됐다.
다음날 새벽 4시(현지시간)를 전후해 문을 연 아시아 증시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출구조사 결과 ‘탈퇴’가 ‘잔류’를 소폭 앞섰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각 부처 장관들이 오전 7시 조식도 건너뛴 채 다우닝스트리트 총리 관저로 속속 모여들었다. 1시간 후 52%(탈퇴)대 48%(잔류)로 브렉시트 국민투표 최종 집표결과가 발표났다.
어두운 표정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오전 10시 관저에서 한 장의 성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국민들 뜻을 받들어 EU와의 탈퇴협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오전 개장한 FTSE100 지수는 4%대 급락세로 출발하고 달러화 대비 파운드화 값은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영란은행(BOE)은 환율 방어를 위해 100억 파운드 투입을, 유럽중앙은행(ECB) 200억 유로의 긴급유동성 지원을 전격 발표했지만 각국 증시와 파운드화·유로화값의 ‘자유낙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으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영국 텔레그래프지가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5일 앞둔 18일자 신문에 ‘악몽의 24시간 시나리오’라며 브렉시트를 가정해 가상으로 쓴 기사 내용이다.
텔레그래프지 기사는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지난 17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실제 브렉시트 발생시 영국이 직면하게 될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브렉시트 보고서를 내놨다. IMF는 64쪽짜리 분량의 보고서에서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올해 영국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는것은 물론 내년에는 0.8%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5.0% 수준인 실업률도 2019년에는 6%를 넘어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2008년 9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 혹한기가 온다는 것이다. IMF는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영국과 다른 EU 국가간 교역이 줄고 영국내 투자와 소비심리가 위축해 런던에 있는 주요 금융회사들도 줄줄이 영국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IMF는 또 시장 유동성이 축소되면 신용경색으로 기업투자·가계 소비가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진단했다. 반면 영국이 EU에 남으면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경제 회복세가 지속돼 올해 경제 성장률이 1.9%선에 이를 것이라고 IMF는 내다봤다.
브렉시트가 현실이되면 영국은 EU에 더이상 분담금을 낼 필요가 없지만 무역과 투자도 그만큼 감소해 큰 실익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히려 영국이 EU를 벗어나 다른 나라들과 새롭게 무역 협정을 맺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과정상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교역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EU지도자들도 최후 통첩성 경고발언을 쏟아냈다.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장관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EU를 떠나는 것은 ‘영국의 건지섬화’(Guernseyfication, )를 뜻한다”며 “영국이 세계에서 보잘것없는 나라로 전락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건지(Guernsey)섬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 왕실 소유 섬으로 프랑스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EU를 떠난 영국이 스스로를 고립시켜 EU 변방의 교역소, 중재 장소로 위상이 결국 추락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탈리아 마리오 몬티 전 총리도 이날 현지 뉴스방송 SkyTG24에 브렉시트 투표가 “완전히 무책임한”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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