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란 노동의 대가로 얻는 것이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스위스의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지급 정책은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매달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300만원), 어린이와 청소년 등 미성년자에게는 650스위스프랑(78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한다.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GNI)이 8만8120달러(1억원·2014년 기준)에 달하는 부자 나라인데다 복지 등 사회안전망도 전세계에서 으뜸인데도 말이다.
2013년 10월 조건없는 기본소득 도입을 처음으로 제안한 민간단체 BIS(Basic Income Switzerland)는 이같은 기본소득이 인권과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한다. 국가가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노동자가 생계를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에만 의존하지 않게돼 직업선택폭이 넓어지고 근로자 권리도 강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월 2500스위스프랑은 스위스의 월 최저생계비(2219스위스프랑)를 기준으로 산출한 숫자다.
지난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후 이어진 장기 저성장과 로봇·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에 따른 ‘일자리 위기’도 기본소득 지급주장의 토대가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스위스 국민 상당수가 AI를 장착한 로봇에게 떠밀려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기때문에 기본소득 도입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이코노미스트는 “머신러닝부터 자율주행차까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근원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기본소득 지급 주장이 수면위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미국서비스노조(SEIU)의 앤디 스턴 전위원장은 자율주행차 등장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점점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도 기본소득 필요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영국 켄트대학의 파올로 다르다넬리 교수는 미국 CNBC방송에 출연, “사회적 화합에 가치를 두는 스위스 사회에서 불평등과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가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소득 불평등에 따른 중산층 위기가 기본소득 지급 논란 배경에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선진국 임금 상승이 정체되면서 ‘일한 만큼 번다’는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 지급안이 통과될 확률은 크지 않다. 무조건적인 퍼주기 정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고 결국 스위스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기때문이다. 스위스 정부는 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재원이 연간 2080억스위스프랑(250조원)에 달해 현재 연방정부 연간 지출액(670억스위스프랑)보다 3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같은 천문학적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려면 다른 사회복지 비용을 줄이고 세금 인상도 불가피하다. 영국 경제매체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이 모든 국민들에게 연간 1만달러(1186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가정할 때 현재 GDP 대비 26%인 세금을 독일과 같은 수준인 35%까지 늘려야 한다. 동시에 다른 사회복지 프로그램도 기본소득으로 대체해야 한다”며 “몇푼 안 되는 기본소득을 나눠주기 위해 너무 많은 세금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비꼬았다. 개인들의 삶의 질과 국가 생산성 저하도 우려된다. 스위스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1은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국민들의 근로의욕이 저하될 것이라고 답했다. 수출로 먹고 사는 경제구조를 가진 스위스에서 근로의욕이 저하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될 수 있다.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실업자 양산도 불가피하다. 과도한 복지때문에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던 이탈리아, 그리스처럼 될 수 있다는게 대다수 스위스 국민들의 우려다. 기본소득 지급은 국가 간 국경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드는 부작용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짜 복지’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이민자들에 대해 더 굳게 문을 닫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스위스 기본소득 개념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1920년대 영국에서도 클리포드 H.더글라스가 기본소득과 동일한 ‘국가 배당(national dividend)’이라는 개념도입을 주장했다. 당시에도 기술 발전으로 생산은 늘어나는데 근로자 소득은 그만큼 증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지난 70년대에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72년에는 민주당 대선 주자로 출마했던 조지 맥가번이 월 1000달러를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50개주중 49개주에서 패배했다. 이후 기본소득은 잊혀졌고 지난 75년 미국 의회에서 근로장려세제(ETIC)라는 다른 형태의 복지정책이 통과됐다. 일정소득 이하 근로자들에게 ‘부의 소득세(negative
[강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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