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러시아 접경지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중국 네이멍구 하이라얼 국제공항에서 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자 지평선마저 아득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광활한 평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감자밭을 보고 있는 겁니다.” 중국 감자학계 대가 우궈린 박사(81)가 말을 건넸다.
인근 헤이룽장성까지 뻗친 감자밭은 총 2억평으로 서울 면적보다 더 크다. 전체 감자밭 부지를 둘러보려면 꼬박 2박 3일간 차를 몰아야 할 정도로 광대하다. 그많은 곡물 중 왜 하필 감자밭을 만들었을까. 중국이 감자에 눈독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13억 인구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시진핑 정부는 ‘감자’를 쌀, 옥수수, 밀에 이은 4대 주식량 작물로 선정, 첨단 감자산업 육성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식량안보를 강화하는 한편 농생명공학이 접목된 감자 배양기술을 앞세워 세계 감자시장을 장악하는 ‘감자 실크로드’건설을 선언한 상태다. 감자는 쌀, 밀, 옥수수 등 주요 작물과 비교해 많게는 생산성이 4배나 높고, 재배시 필요한 물의 양이 다른 작물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지구촌에 재앙이 들이닥치더라도 감자 재배는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생산은 수월한데 반해 단백질 함량은 밀의 2배다. 때문에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감자를 국가 식량안보를 책임질 작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중국은 감자를 4대 주식량 작물로 선포하고 곧바로 ‘감자산업 개발 추진에 대한 지도의견’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감자 재배면적을 한국 면적의 67%에 달하는 6만6667km2로 넓히는 동시에 201평당 감자 생산량을 현재 1t에서 2t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전체 주식량 작물중 감자 소비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유엔(UN)에 따르면 전 세계 감자시장 규모는 식용감자 120조원, 가공감자 50조원, 씨감자 20조원 등 총 190조원에 이른다. 중국이 식량 안보와 함께 글로벌 감자시장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배경이다. 이곳 감자밭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 최대 작물재배 국유기업 베이다황그룹과 한국 농생명공학 벤처기업 이그린글로벌(EGG)이 공동 운영하는 씨감자 파종기지는 감자 생산량의 획기적 증대에 나선 중국 정부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감자를 재배하기 위한 씨앗 종자인 씨감자 배양법으로 ‘경삽법’을 이용해왔다. 경삽법은 멸균 배양토를 갖춘 온실에 씨감자 줄기를 심어 씨감자를 연 1회 수확한다. 하지만 EGG는 씨감자 생산 패러다임을 확 바꿔놓을 신기술을 선보였다. EGG 배양법은 조직배양실에서 씨감자 줄기를 증식시킨 후 암배양실에서 씨감자를 매일 수확한다. 마치 암탉이 매일 달걀을 낳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기준 EGG 대표는 “씨감자 평당 생산량을 보면 경삽법은 528개에 불과하지만 EGG 배양법은 6만6000개로 수확량이 126배나 많다”며 “식물공장 시스템을 통해 저비용 대량생산과 연중 수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GG에 따르면 경삽법을 이용해 온실을 지어 씨감자 1000만개를 재배하려면 2만평의 토지가 필요하지만, 식물공장에서 배양할 경우 400평이면 충분하다.
아무리 많은 씨감자를 생산하더라도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오염되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무병(無病) 씨감자를 재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농생명공학 선진국인 미국과 비교해 중국의 무병씨감자 배양 기술은 한참 뒤쳐져 있다. 미국서 무병씨감자 하나를 심어 수차례 배양해 100개의 무병씨감자를 재배한다면 아직 중국서는 20~30개 밖에 수확하지 못한다. 이와관련해 60년 넘게 감자 연구만 해온 중국 감자학계 대가이자 EGG 연구위원인 우궈린 박사는 “EGG 배양법의 강점은 100배 이상의 평당 생산량뿐만 아니라 90%에 이르는 무병씨감자 재배율”이라고 강조했다. 감자는 함께 딸려오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탓에 각국 정부에서 엄격히 수입 제한을 하고 있어 국제 거래량이 10% 미만이다. 때문에 중국은 감자의 직접적인 수출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우량품종 배양 기술을 전수하거나 식량안보 취약국가에 농업기업을 설립, 감자 생산·보급을 하는 전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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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 =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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