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정당 약진에 메르켈은 정치적 위기
13일(현지시간) 독일 3개 주에서 치러진 주의회 선거 결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당수로 있는 기독민주당(CDU)은 크게 후퇴한 지지율을 받아들며 쓴잔을 마셨다. 반면 반난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전 주에서 2~3위 자리를 휩쓸며 사실상 독일 내 제3당 수준까지 대약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기민당은 선거를 치른 3개 주 중 작센안할트에서만 가까스로 1위를 지켰고,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라인란트팔츠에서 두 곳에서는 2위로 밀려났다. 작센안할트에서는 29.8%를 얻어 1위 수성에 성공했으나, 역대 가장 낮은 득표율을 얻었을 뿐더러 바로 밑 24.2%를 득표한 AfD에 턱밑까지 추격당했다.
라인란트팔츠에서는 31.8%를 얻었지만 이보다 4% 이상을 더 얻은 사회민주당(SPD)에 밀려났다.
독일에서 인구 기준 세 번째로 큰 주인 바텐뷔르템베르크에서도 27.0%를 얻는 데 그쳐 30.3%를 얻은 녹색당에 사상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또 세 주 중 작센안할트가 독일 동부에, 라인란트팔츠와 바덴뷔르템베르크는 서부에 위치해 있어 사실상 기민당 인기가 독일 전역에서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결과인 셈이다.
반면 극우 AfD는 작센안할트에서 2위,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라인란트팔츠에서 3위를 차지하며 역대 선거 사상 최고 성적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AfD가 선거에서 2위 이상 자리를 획득한 건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이로써 AfD는 3개 주의회 진입에 모두 성공해 독일 연방 16개주 가운데 8곳에 의석을 갖게 됐다. 프라우케 페트리 AfD 당수는 “우리는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며 “독일에 존재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이번 선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결과는 가뜩이나 난민 정책 문제로 흔들리고 있던 메르켈 총리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난해 여름 이후 본격화한 난민 위기에 국경 개방으로 대응한 ‘메르켈표 난민정책’이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선거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난민통제 강화를 희망하는 민심이 그대로 투표에 투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홀저 슈미딩 베렌베르크은행 애널리스트는 “이번 선거 결과는 메르켈에 대한 가장 심각한 질책이자, 여태까지 나온 것 중 가장 두드러진 반대 투표”라고 말했다.
오는 17일 예정된 EU-터키 간 난민협정 최종 합의에서 메르켈의 보폭도 좁아지게 됐다. 국내에서 정치적 약점을 노출한 메르켈 총리의 말을 EU 내 협정 반대국들이 곧이곧대로 받아줄 리 없는 탓이다. 반대로 오르반 빅토리 헝가리 총리와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등 ‘합의 거부’를 선언한 정상들의 목소리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의 운명과 별개로, 이번 선거가 독일 정치지형 자체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독일 정치권은 기민당과 사민당 ‘양대 국민정당’이 지배권을 쥐고 이끌어 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녹색당이 1위를 차지하고, 작센안할트에서 좌파당이 3위를 거머쥐는 등 크게 선전했다. 극우 AfD와 반대 극단 좌파당, 녹색당이 덩달아 상승세를 탄 건 기성 양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양 극단으로 몰려 ‘정치지형 양극화’가 심화된 탓이라는 분석이다. 로이터는 이번 선거가 “2차대전 이후 가장 두드러지는 독일 정치지형 변화”라며 “독일 정치지형이 전쟁 이후 역대 최고로 파편화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호세프는 하야요구 300만명 시위에 벼랑끝
독일 지방의회 선거가 펼쳐진 날 브라질에서는 300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브라질에서 벌어진 역대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다.
시위대는 브라질 국기를 상징하는 노랑·초록색 옷을 입고 길에 나서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물러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연립정권에 참여한 정당들마저 여론을 살핀 후 연정에 남을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혀 탄핵 가능성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은 2014년 연임에 성공한 이래 극심한 경제불황·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 비자금 사건 등이 겹치며 끊임없이 퇴진요구에 시달려 왔는데, 이번 시위로 정치적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브라질의 여론조사전문기관 데이터폴하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세프 대통령 지지율은 11%에 그친다.
호세프 대통령 탄핵 운동의 직접적 계기는 지난해 3월 촉발된 페트로브라스 비자금 스캔들이다. 브라질 법원이 지난해 12월 총 57명에게 680년 8개월의 형량을 선고한 대형 사건으로, 상당수 비자금이 집권 노동자당에 흘러간 것으로 파악됐다.
호세프 대통령은 페트로브라스 이사회 의장을 맡고, 전임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집권 당시 자원부 장관까지 지낸 경력 탓에 직격탄을 맞았다. 사건이 공론화된 지난해 3월에도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참여한 탄핵 시위가 벌어진 바 있다.
호세프 뿐 아니다. 복지정책만 외치다 경제난을 맞이한 노동자당 정권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남미 최대 산유국중 하나인 브라질은 유가가 고공행진하던 시절 복지비를 펑펑 써댔다.
그러나 지난해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며 브라질 경제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8%로 25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고, 올해 역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불황이 이어지자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지난달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a2까지 두 단계나 낮췄으며, 이번달 초 피치까지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내비쳤다.
브라질 의회는 결국 지난해 12월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를 공식적으로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호세프 대통령의 우군으로 분류되던 인사들마저 이탈해 더욱 치명적이라는 평가다.
연립정권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소속 에두아르두 쿠냐 연방하원의장은 탄핵 절차를 주도하고 나섰고, 같은당 소속인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마저 등을 돌렸다. 특히 테메르 부통령은 탄핵정국 속에서도 PMDB 내에서 호세프 지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힘썼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그는 호세프 대통령에게 “재임 첫 4년간 나는 의전용 부통령이었다. 호세프 대통령과 PMDB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느라 정작 내 입지는 약화됐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사실이 공개됐다. 그는 이번 시위에 대해서도 “PMDB는 브라질의 가치를 되살릴 준비가 돼 있다”며 탄핵이 이뤄지면 자신이 정부를 이끌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최근 룰라 전 대통령
[문재용 기자 / 문호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