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로슈 아바스틴 <자료: BMJ> |
미국 뉴욕에 위치한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 센터 연구팀에 따르면 주요 제약사들이 의도적으로 대용량 포장에 나서고 보건당국의 불명확한 정책 때문에 수많은 약들이 사용도 하지 못한 채 버러져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내용은 영국의학저널(BMJ) 최근호에 게재됐다.
피터 바흐 박사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미국에서만 매년 버려지는 항암제는 약 30억달러(약 3조7000억원)로 추산됐다. 항암제가 버려지는 것은 제약사들의 대용량 ‘도즈(Dose)’때문이다. 항암제의 경우 대부분 액체 형태의 주사제로 돼있는데 출시된 항암제 1병의 용량은 환자 1인에게 평균 투여되는 양을 넘어선다.
전이성 유방암·직결장암, 비소세포폐암 등에 사용되는 로슈의 대표적 항암제 ‘아바스틴’의 경우 미국에선 한 병에 100㎎과 400㎎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환자 1인에게 평균적으로 투여되는 양이 350㎎ 내외라는 점이다. 100㎎ 제품을 사용할 경우 4병, 400㎎ 제품의 경우 1병을 사용해야하는데 두 가지 경우 모두 50㎎이 남게 된다. 남는 치료제를 모아뒀다가 다른 환자에게 사용할 수는 없다. 감염의 위험이 있다며 폐기하라는 보건당국의 권고가 있기 때문이다.
1병에 400㎎ 기준으로 본다면 7명의 환자에게 약을 투여할 때마다 1명분을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병을 개봉했을 때 가장 많이 버려지는 제품은 암젠의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키프롤리스’였다. 미국에서 1병 당 60㎎
제품으로 판매되는 이 약은 평균 37%가 버려졌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제약사들은 항암제를 사용하는 병원 등의 입장에선 버려지는 약에도 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1병 당 고용량 정책을 유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약들이 많이 버려질 수록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연구팀이 판매량 상위 20개 항암제를 조사해본 결과 버려지는 약들로 인해 미국인들이 추가로 지불하는 약 값만 연간 18억달러(2조2100억원)에 달했다.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지불하는 비용도 추가로 연간 10억달러(1조2300억원)로 추산된다.
연구팀은 일부 제약사들의 경우 의료현장의 선호와 달리 소용량 제품을 없애고 1병 당 용량을 키운 대용량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이성 폐암과 악성 흑색종 치료제인 머크 ‘키트루다’의 경우 미국에서 50㎎ 단위로 판매해왔지만 최근 100㎎으로 병 당 용량을 올렸다. 머크는 이로 인해 지난 5년 간 10억달러의 추가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연구팀은 쓰지도 못한 항암제가 버려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당국이 나서야 한다며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우선 의료 당국이 명확한 정책기준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로 공적의료보험을 담당하는 ‘의료처치 및 의료지원 서비스센터(CMS)’는 치료제 1병에 남은 약을 써도 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질병통제센터(CDC)는 감염
연구팀은 제약사들도 소용량 포장을 추가해 제품을 출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버려지는 약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같은 변화를 통해 의료계 전체적으로 연간 20억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영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