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아이폰에 담긴 정보를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볼 수 있도록 협조하라는 법원 명령을 애플이 거부하면서 ‘국가 안보’와 ‘고객 프라이버시 보호’ 주장이 대충돌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로스앤젤레스(LA) 샌버나디노에서 발생한 무슬림 부부의 총기난사 테러였다. 당시 FBI는 용의자인 무슬림 부부가 시리아 무장단체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테러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 이들 부부가 사용했던 ‘아이폰 5C’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FBI는 뜻밖의 암초에 부딪혔다. 아이폰 보안기능 중 하나인 ‘잠금해제’를 풀지 못했던 것. 결국 FBI가 미국 법원에 도움을 청했고 지난 16일(현지시간) 법원은 용의자 아이폰에 담긴 정보를 FBI가 활용할 수 있도록 애플이 지원할 것을 명령했다.
FBI가 아이폰을 풀지 못했던 이유는 애플의 독특한 보안체계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아이폰 최신 운영체제(iOS 9.2.1)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는 지원하지 않는 강력한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아이폰을 잠금 상태에서 해제하기 위해서는 비밀번호 6자리를 눌러야 하는데, 5차례 틀리면 다음 입력까지 1분을 기다려야 하고, 9차례 연달아 틀리면 10번째부터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를 비밀번호 대기시간 설정이라고 한다. 또 개인설정을 통해 데이터 자동삭제 기능을 실행할 수 있다. 비밀번호 입력을 10차례 틀리면 아이폰에 담긴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에서 삭제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애플 아이폰은 ‘아이클라우드’를 통해 자동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에서 정보가 삭제되더라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일부 개인정보를 백업할 수 있다.
FBI는 무슬림 사건 발생 후 최근 2달간 용의자 아이폰 자금장치를 풀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FBI는 아이폰을 분해한 뒤 FBI가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암호 조합을 대량으로 입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이 암호를 인식하는데 12분의 1초가 걸리도록 복잡한 연산장치를 만들어 놨다. 이때문에 FBI가 고속 입력기를 가동하더라도 암호조합을 1초에 12개 밖에 시도하지 못했다. 현재 아이폰에서는 6개 비밀번호를 대문자, 소문자, 숫자 조합으로 만들 수 있다. 만약 암호 6자리가 모두 숫자로만 이뤄져있다면 조합의 수는 100만개 정도로 입력 시간도 22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암호가 대문자, 소문자, 숫자로 이뤄졌다면 조합의 수는 568억개로 급증하게 되고, 입력시간은 단순 계산으로 144년이 걸린다.
때문에 법원은 FBI가 아이폰의 모든 기능과 자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명령했지만 애플은 즉각 반발했다.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고객에게 드리는 메시지’를 통해 “이용자 보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전례없는 정부 명령에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쿡 CEO는 “정부는 애플에게 애플 고객을 해킹하고, 해커들과 사이버 범죄로부터 미국인을 지켜온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일제히 애플을 지지하고 나섰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 는 18일 자신의 트워터에 “회사를 강제해 해킹이 가능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고객 사생활 침해와 상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애플의 강력한 보안 시스템 때문에 아이폰을 찾는 고객층이 많다는 점에서 애플이 이번 판결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FBI를 비롯한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 앞세워 법원 판결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로저스 미국 국가안보국(NSA) 국장은 야후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파리 테러범들이 암호화 기술을 이용해 서로 통신하면서 당국의 추적과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며 “정보 당국이 테러범들의 통신을 추적할 수 있었다면 파리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FBI 관계자는 WP와의 인터뷰에서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나아가 중대한 범죄에 한정하고, 법률이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 정보를 이용하면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할 수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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