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처럼 번지기 시작한 마이너스 금리가 세계경제를 새로운 공포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경기 부양 카드를 소진한 중앙은행들이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극약처방을 경쟁적으로 감행하면서 시장 왜곡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 이같은 공포를 증폭시켰다. 유럽에서 일본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전염’되자 세계경제의 4분의 1 가량이 마이너스 금리 영역에 편입됐고, 각종 지표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심지어 엔화 가치는 마이너스 금리 약발이 다하기도 전에 미 달러화 대비 연일 초강세를 보이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파격 행보에 이어 스웨덴중앙은행인 릭스뱅크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0.35%에서 -0.5%로 더 낮추며 기준금리를 추가로 떨어뜨렸다. 이에 더해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11일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마이너스 금리도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묘한 여지를 남겼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마이너스 금리 공포에 빠진 것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실험이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당초 중앙은행들은 시중은행의 예치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해 은행들의 대출 확대를 독려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시중 유동성을 늘리고 디플레이션 늪에서 탈출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선 순기능보다 역효과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은행들의 실적 부진과 부실 우려에 따른 은행주 폭락이다. 마이너스 금리 환경에선 은행들의 전통 수익원인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이 말라붙을 수밖에 없다. 또한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게 아니라 보관료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은행권 실적 악화와 부실 → 대출 위축 → 실물경제 둔화 → 디플레이션 확대’ 악순환에 빠질 공산이 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한 중앙은행들이 사면초가에 몰렸다고 분석했다. 이들 나라의 경제 현실은 금리인상을 버텨낼 재간이 없고, 해당국 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의 역풍을 견뎌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악재를 만난 은행주들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11일 스위스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의 주가는 27년 만에 최저인 12.31스위스 프랑(약 1만5000원)으로 급락했다. CS 주가는 올들어 무려 43% 빠졌다. 지난달 29일 이후 일본 대표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금융그룹의 주가는 26.7% 하락했다. 도이체방크는 17.1% 모건스탠리는 16.2% 하락했다. 특히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가 코코본드(우발 후순위 전환사채)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부각된 것도 시장 불안을 가중시켰다.
월저널은 또 마이너스 금리가 주요국 국채 금리 등 각종 금리를 끌어내리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제로의 중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독일·일본 등의 국채 10년물 금리의 최근 5년 추이를 살펴보면 제로를 향해 수렴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이는 장단기 금리차를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의 금리차는 최근 0.99%포인트로 2007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는 미 경제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마이너스 금리발 충격은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하락시켰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과거 금융위기가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처방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정책 실패로까지 지목되고 있다.
한스 레데커 글로벌 모건스탠리 외환전략 부장은 블룸버그 TV와 인터뷰에서 “지금 중앙은행들이 한가지 교훈을 깨달아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면서 “마이너스 금리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작동하지도 않는 다는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스티븐 젠 SLJ 매크로 파트너스 공동 창립자도 블룸버그에 “중앙은행들이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새로운 것을 내놓으려고 애쓰고 있으나 점점 시장과 은행이 파괴되는 모습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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