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30일 도쿄 시부야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한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고도(故都) 교토행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오후 늦게 교토역에 도착한 아베 총리는 교토영빈관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를 맞이했다. 외국 정상이 수도가 아닌 교토로 입국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아베 총리가 외빈을 맞이하러 도쿄 밖까지 찾아간 것은 더 이례적인 일이었다. 두 정상은 이틀간 영빈관 정원을 거닐고, 교토 명승지를 함께 돌아보며 끈끈한 유대를 쌓았다. 취임 후 첫 해외순방에 나선 모디총리를 교토에서 ‘오모테나시’(일본 특유의 극진한 손님맞이)로 사로잡은 아베 총리는 도쿄 정상회담에서 돈보따리까지 풀어놨다. 인도에 3조5000억엔에 달하는 투·융자를 약속하면서 아베 총리는 “일본 신칸센 시스템을 인도가 도입하기를 기대한다”고 운을 뗐다. 극진한 대접과 선물을 받은 모디 총리는 “일본이 인도 고속철도와 관련해 조사를 실시해줘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시간을 거슬러가 5년 전인 지난 2009년, 인도 고속철도 예비 사업화조사(FS) 컨설팅을 프랑스 업체가 맡게 됐다는 첩보가 일본에 전해졌다. 컨설팅업체는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대로가면 프랑스 고속철 TGV가 절대유리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동양경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때부터 치밀한 반격카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프랑스는 세계은행이나 구주투자은행 융자를 받더라도 자금동원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파고들어 저금리 엔차관으로 인도 정부 설득에 들어갔다. 실무진도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1년 인도 철도성 간부 12명을 일본에 초청해 인도 철도실무자들을 신칸센 팬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예비 사업화조사는 프랑스가 맡았지만 2013년 본격적인 사업화조사는 결국 일본 기업 컨소시엄이 빼았아왔다. 모디 총리 방일 직전 ‘전용궤도방식을 전제로 한 선로계획’이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인도 정부에 제출됐다. 신칸센이라는 단어는 보고서 어디에도 없었지만 전용궤도방식은 곧 신칸센을 의미했다. “인도 고속철 조사를 해줘 고맙다”는 모디 총리의 도쿄 발언은 수년간 일본 민관이 외교전을 펼친 결과물이었다.
지난해 모디 총리 방일 이후에도 신칸센 수주가 최종 확정될 때까지 일본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 10월 일본은 인도 국회의원들을 도쿄에 대거 초청해 분위기를 돋궜다. 이어 인도를 찾은 아베 총리는 뭄마이~아메다바드(505km) 고속철 건설비용 80%에 대해 상환기간 50년, 연 0.1% 라는 파격적인 조건의 엔차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모디 총리는 오케이 사인을 냈다. 6년 간의 치밀했던 외교 전략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인도 신칸센 수주 과정에는 일본 외교전략의 특징이 모두 녹아있다. 첫째, 외교상대국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을 찾아 집중 공략한다는 점이다. 연 5조엔이 넘는 ODA(개발원조)는 상대국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외교 수단으로 활용된다. 원하는 외교목표 달성을 위해 의사결정 주변부의 우군을 장기간에 걸쳐 최대한 확보하는 것도 장기다. 외교 경쟁국이 ‘일본에 허를 찔렸다’고 느끼는 것은 소리소문없이 장기간에 걸친 물밑작업에 당했을 때다. 일본 특유의 민관협력도 외교전략의 주요한 축이다. ODA 지원국이 결정되면 재계는 대대적인 동반투자로 몇 배 이상의 효과를 낸다. 한 번 방향을 잡은 외교전략이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확대를 노리는 일본의 행보에서도 이런 외교 전략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현직 총리로는 14년 만에 방글라데시를 찾아 최대 6000억엔(5조8000억원)의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아베의 경제지원 약속후 일본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시아의 마지막 프론티어”라며 방글라데시에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대가는 분명했다. 일본과 방글라데시는 당초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임기 2년) 아시아·태평양 의석을 놓고 경합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아베의 대대적인 경제지원 이후 방글라데시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후보자격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일본 지지를 선언했다.
일본이 비상임이사국에 기필코 진출하려는 이유는 이를 발판으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라는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서다. 독일, 브라질, 인도 등과 협력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노리는 일본의 전략은 강대국 변방의 회원국 공략이다. 상임이사국 5개국 설득도 중요하지만 유엔회원국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유엔개혁안을 통과시키기 힘들다. 아프리카, 동남아, 태평양 소국, 중남미 등 경제원조가 절실하고, 회원국 수가 많은 지역이 일본의 집중 공략대상이 돼왔다.
일본은 내년 여름에 아프리카 케냐에서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를 연다. TICAD는 1993년 도쿄에서 첫 회의를 연 후 5년에 한 번씩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열려왔다. 2013년 요코하마 회의에는 아프리카 51개국 39개국 정상이 참가했을 정도로 회의 규모가 커졌다. 그런데 일본은 5년마다 열리는 회의를 내년부터 3년마다 열기로 하고 여섯번째 회의를 아예 아프리카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아프리카 자원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외에 유엔안보리 개혁에 대한 지지를 다지려는 목적도 숨어있다.
올해 후쿠시마현에서 17개국 정상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태평양·섬서밋(PLAM)은 일본이 1997년부터 3년에 한 번씩 열고 있는 태평양 지역 섬나라 정상회의다. 2009년부터는 메콩강 유역 국가들까지 불러모아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국제기구에서 투표를 하면 일본이 늘 압도적인 득표를 하는 것은 수십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공을 들여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중국 해양진출을 의미하는 진주목걸이에 대항하기 위한 다이아몬드 전략 구축과정도 치밀하다. 지난해 7월 집단적 자위권 헌법 해석 변경 각의 결정과 올해 4월 미·일 정상회담 직전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지난 9월 안보법 국회통과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확고히 구축한 아베 총리는 11월과 12월 잇따라 인도·호주와 정상회담을 갖고 다이아몬드 안보전략을 확고히 했다. 일본 기업들이 수년전부터 ‘차이나+1’ 전략을 표방하며 중국 외 동남아 등지로 생산시설 등을 옮기는 것도 크게 보면 일본의 중국 견제라는 외교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방영토를 되찾기 위한 일본의 대(對)러시아 외교를 보면 일본 외교의 끈질긴 면이 드러난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서방국가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북방영토(쿠릴 4개섬) 반환을 목표로 삼고 있는 아베 정권은 푸틴 대통령의 방일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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