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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교수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아하게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삶에서 진정한 기품은 스스로 자신에게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우아하게 허락’할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인 기품의 존재 여부가 바로 보스와 리더를 구분짓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된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Warren E. Buffett)의 삶은 이러한 점과 관련해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워렌 버핏은 젊은 시절에 심각할 정도로 사교성이 부족했다. 그 자신도 그러한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액의 수강료를 내고 웅변학원에 다닐 정도였다. 젊은 시절에 워렌 버핏은 아담한 체구에 갈색 머리를 가진 여대생이었던 수잔(Susan)에게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여대생이었던 그녀는 버핏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는데다가 만났을 때 허둥대고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수잔은 점차 일상생활에서 부적응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서 모성애와 보호본능을 느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리고 버핏은 결혼생활 내내 수잔에게 의지하고 싶어 했고 또 수잔 역시 그러한 워렌 버핏을 포용해 주었다. 수잔은 버핏에 대해 농담처럼 자신의 상담실에 찾아온 ‘첫 번째 내담자‘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갔다.
그런데 여행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수잔은 평생 블루스와 재즈를 연주하고 싶어 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수잔은 버핏이 경제계의 거목으로 성장한 후, 일 년에 300시간을 비행기로 오마하와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생활을 했다. 너무나 소모적인 일정이었기 때문에 결국 수잔은 주거지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수잔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워렌 버핏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버핏은 이 결정이 ’내 평생 가장 큰 실수‘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버핏은 수잔을 위해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애정관계를 유지했다.
수잔은 2004년에 구강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투병생활을 하던 중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워렌 버핏은 자신의 유산 집행자였던 수잔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이 의지할 또 다른 사람을 물색했다. 후에 그는 빌 게이츠 부부가 자신의 새로운 유산 집행자라고 발표했다.
현재 버핏은 17세 연하인 두 번째 부인 애스트리드 맹크스(Astrid Menks)와 살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두 번째 부인인 맹크스를 워렌 버핏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로 수잔이었다는 점이다. 수잔은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무렵 요리사인 맹크스에게 자신의 남편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수잔은 워렌 버핏이 여성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은 수잔이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후부터 맹크스와 함께 생활했고 수잔이 죽은 후 맹크스와 결혼식을 올렸다.
워렌 버핏은 평생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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