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가 서로 대사관을 재개설하기로 하면서 양국 국교정상화의 정점을 찍었다. 1961년 외교관계 단절 이래 54년만이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양국 외교 당국이 워싱턴과 아바나에 각각 쿠바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을 설치키로 합의했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외교관계 복원을 공식 선언한다.
대사관 재개설 시점과 장소 등 구체적인 내용은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3일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대사관 재개 시점에 맞춰 케리 장관이 쿠바를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주 쿠바 미국 대사관 개설 시기는 이달 말이 유력하다. 장소는 국교 단절 이전에 미국 대사관이 있었던 엘 나시오날 호텔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는 냉전시대 유물을 청산했다는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중요한 외교적 업적이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냉전 시기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주요 외교 목표로 삼고 추진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해 12월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 국교정상화를 선언한 이후 6개월여만에 대사관 재개설 합의까지 속도를 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교 정상화 선언 이후 미국 재무부와 상무부는 쿠바와의 무역 및 금융 거래 제한 조치를 대폭 완화하고 여행도 자유화한다고 발표했다.
양국의 극적인 외교관계 회복은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미국으로서는 유럽연합(EU)이 쿠바와 관계개선에 나서고 중국이 남미진출을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쿠바 봉쇄정책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쿠바 역시 50년 넘게 지속된 고강도 금수조치로 경제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미국과 관계 복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미국과 쿠바의 완전한 국교정상화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미국 정부는 쿠바를 반체제 인사들을 투옥하는 인권침해 국가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인권에 관한 주제에서는 양국의 대화가 매끄럽지 않다. 과거 쿠바가 몰수한 미국인의 재산 처리, 경제제재로 인한 쿠바의 손실 보상 그리고 쿠바로 도망간 미국인 범죄자 처분 등이 쟁점으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쿠바에 대해 부정적인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 의회가 양국 국교정상화를 순순히 승인해 줄지 여부가 주목된다. 공화당은 쿠바가 여전히 독재국가인데다 ‘적성국 교역법’에 적용을 받는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 전면해제와 주 쿠바 미국 대사관 개설자금 지원에도 반대하고 있다. 미 하원 공화당이 지난 2일 통과시킨 478억달러 규모의 2016년 회계연도 국무부 예산안에는 주 쿠바 대사관 또는 다른 외교 시설 개설과 관련해서는 예산을 쓸 수 없도록 하는 단서를 달았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 회복으로 북한이 세계 유일의 냉전 잔재로 남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009년 취임 이전에 관계 개선을 기대한 3개국이 바로 쿠바, 이란, 북한이었다. 현재 미국 주도로 진행 중인 이란 핵협상이 타결될 경우 북한의 고립은 더욱 가속화된다.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4차 핵실험 강행 등 도발을 할 경우 북미관계는 회복 불가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다.
미국과 쿠바는 50년 이상 적대관계를 이어왔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공산화를 전격적으로 선언한 뒤 쿠바 내 미국 기업의 재산을 몰수하고 국영화하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61년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이듬해부터 곧바로 금수조치에 들어갔다. 1979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쿠바 여행금지 조치를 풀면서 유화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1982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를
쿠바 정부가 2009년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간첩 혐의로 체포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 악화됐으나 지난 해 그로스 석방을 위한 물밑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이 20여분간 전화통화를 갖고 관계 정상화라는 의외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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