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가 두 개 있는 거 보니 내 자식이 맞는 갑네”
지난 11월 쓰촨성 진양시 구지아현에서 사료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장밍파(이하 장선생)와 주위화(이하 주여사) 부부. 부부는 자신을 찾아온 한 젊은 남성을 유심히 쳐다본다. 생면부지지만 왠지 얼굴 모양새가 비슷한 젊은 남성. 원잉(가명,31)이란 이름의 이 남성은 친부모를 찾기 위해 몇 천 km 떨어진 헤이롱장에서 왔다.
사건의 발단은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4월19일 장밍파와 주위화 부부는 쓰촨성 진양시 내 씨아와롱촌에서 둘째 아들을 낳는다. 당시 중국은 인구 수 억제를 위해 한자녀 정책을 펴고 있었다. 유일하게 둘째를 ‘합법적’으로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월 수입의 수백 배에 달하는 벌금을 내는 것뿐. 장 선생은 토지사용권을 담보로 잡고 지인의 힘을 빌어 벌금의 80%를 마련하고 나머지는 촌 위원장과 협의해 ‘퉁쳤다’. 하지만 이 사실이 상급기관에 적발되어 둘째 아들은 불임부부나 홀아비가 있는 가정으로 ‘강제 입양’되고 주씨 부부는 ‘공개비판’을 받아야 했다. 주여사는 “더 이상 마을에서 버티기 힘들어 구지아현으로 올라가 사료가게를 열었다”며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그렇게 둘째아들이 뇌리에서 잊혀질 즈음인 1997년. 장씨부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한 중년 남성이 14살짜리 남자 아이를 가게에 데려와 “당신의 둘째 아들이니 잘 키우시오”라고 말한 것이다. 인근병원에 친자확인을 하니 “거의 그런 거 같다”는 답변도 돌아왔다. 장씨 부부는 너무나 기뻐 애지중지 청년을 키웠다. 하지만 실제 그 청년은 친자식이 아니었다. 장선생은 “9년 후 그 아이가 저희한테 자신은 친자가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외지로 홀연히 떠났죠”라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장시 부부는 ‘둘째 아들’을 마음 속에서 지웠다.
하지만 2014년 11월 어느 날,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인근주민이 주여사에게 ‘친부모를 찾는 전단지’를 가져다 준 것이다. 인적사항이 둘째 아들과 너무 비슷했다. 주 여사는 며칠 간 밤을 설치며 고민하다 전화벨을 울렸다. 전단지의 주인공은 헤이롱장 치치하얼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원잉. 그는 자식을 낳은 후 친부모를 너무 찾고 싶어 지난 1년 간 사천성의 촌이란 촌은 다 뒤져가며 전단지를 뿌렸었다. “산아제한당국에는 기록이 안 남아서 직접 발로 뛸 수밖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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