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난 11월 연금에서 풀려났는데요.
MBN이 대한민국 방송사 가운데 최초로, 수치 여사와 인터뷰에 성공했습니다.
정성일 기자입니다.
【 기자 】
미얀마의 옛수도 양곤에 있는 민주민족동맹 당사.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랜 연금 생활 탓인지 몸은 바짝 말라 있었지만, 눈빛만은 영롱하게 살아있었습니다.
군부가 비록 여사의 육신은 가뒀지만, 그녀의 영혼을 꺾어 놓지는 못한 듯했습니다.
▶ 인터뷰 : 아웅산 수치 / 미얀마 민주화 운동가
- "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개개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의지입니다. 저는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자유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988년, 수치 여사는 뜻하지 않게 민주화 운동의 길에 들어섭니다.
영국에서 여사가 모친의 병간호를 위해 고국을 방문했을 때 미얀마는 군부 독재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1988년 8월 8일 8시.
분노한 국민들은 이른바 8888항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수치 여사가 있었습니다.
여사는 미얀마 독립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딸입니다.
'국부의 딸' 수치 여사는 1989년 첫 가택 연금을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15년을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1990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지만, 군부 정권에 찬탈당했고, 91년 노벨평화상도 아들이 대신 수상해야 했습니다.
99년엔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도, 임종은커녕 장례식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국민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자신의 개인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얀마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탄탄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인터뷰 : 아웅산 수치 / 미얀마 민주화 운동가
- "민주주의가 없다면 투명성이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또, 투명성이나 신뢰성이 없다면, 경제 분야에도 불의가 만연할 것입니다."
'The Lady.'
군부 독재 하에서 여사의 이름을 부를 수 없어 국민들이 붙여준 별칭입니다.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이름을 온전히 부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MBN뉴스 정성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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