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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명예회장이 8일(현지시간) 진행한 매일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가 정신에 대한 생각과 은퇴 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서 회장은 지난해 `비즈니스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EY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을 수상했다. [사진 제공 = 셀트리온그룹] |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명예회장(65)은 세계가 한국의 기업가정신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기업들을 육성하기 위해선 기존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리는 'EY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EY World Entrepreneur of the Year 2022)'에 참석하는 서 회장은 8일(현지시간) 매일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하며, 한국 기업가정신의 제고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함께 은퇴 후 행보와 관련한 계획을 밝혔다. 그는 지난해 행사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우수 기업가(월드 마스터)상'을 받았다. 언스트&영(EY·Ernst&Young)이 수여하는 EY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은 글로벌 기업가에게 주어지는 '비즈니스계의 오스카상'으로 꼽힌다. 각국에서 뽑힌 최우수 기업가 중에 매해 한 명을 선정해서 주는 상으로, 작년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그는 "9일 열리는 시상식에서 올해 최우수 기업가에게 상을 주는 시상자 역할을 하기 위해 왔다"며 "지난해에는 온라인으로 수상했지만, 올해 직접 행사에 참석해 세계 각국의 최우수 기업가들과 만나 보니 이 상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참가 소감을 털어놨다.
셀트리온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서 회장은 기업과 국가의 미래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가일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이 회사의 미래였다. 회사 경쟁력에 대한 검증과 준비를 기본으로 하고, 직원들의 미래와 주주들의 신뢰에 대한 보답이 그 위에 쌓여야 한다"며 "이런 기업의 경쟁력이 모여 국가 경쟁력이 되는데, 지금은 기업이 준비해야 하는 미래가 수시로 바뀌는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걷히고 있다지만 후유증은 여전한데, 인플레이션마저 예고되고 있다. 조정이 잘되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흔히 기업가들에게 한 해마다 도전의 화두가 온다고들 하는데, 올해는 두 개의 화두가 같이 온 격"이라며 "흔하지 않은 우려의 시간이 기업들에 엄습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 같은 큰 규모의 기업보다 외부의 거친 풍파를 견뎌야 할 수많은 창업기업이 더욱 걱정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셀트리온의) 직원들과 주주들에게는 회사가 잘되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만들어갈 나라를 위해선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약바이오 업종인 회사를 위해서도, 미래의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계획)을 위해서도 초기 연구가 중요하고, 그래서 스타트업의 중요성이 크다"며 "다만 대가만을 위해 스타트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우리의 투자 조건은 라이선스 아웃을 할 때 우선협상권을 달라는 정도"라고 역설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투자 요체인 셈이다. 실제로 셀트리온그룹의 투자 규모는 한 해 1500억원에 달한다.
서 회장은 "투자는 기업가정신 계승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른바 100대 기업은 성공을 기반에 둔 회사들 아닌가. 이런 회사의 정신을 배워서 새로 싹트는 창업가들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며 "100대 기업이 100개의 후배 기업을 기르면, 곧 1만 신생기업이 된다. 이들에게 10억원씩 투자해도 1000억원"이라며 "연구개발(R&D) 투자를 1000억원 정도도 안 하는 100대 기업이 어디 있겠나. 지원해주고 기업가정신을 물려주는 주체가 이미 성공해본 기업들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만 지원했다고 지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창의성을 살려가게 돕는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뭘까. 서 회장은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 회사의 부도를 보고서도 회사를 만들어나갔다"며 "지금은 포브스 부자 순위에도 이름이 올라간다지만 내 자부심은 전(全) 계층을 살아본 사람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할 수 있는 게 많아져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순댓국이듯, 점차 바뀌지 않는 것에 더욱 마음이 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미래를 만들고, 약자를 돕자는 보다 단순한 목표에 눈길이 갔다"고 털어놨다.
서 회장은 지난해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 수상도 이런 생각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나 말고도 훌륭한 기업가들이 그동안 많았지만, 한국 기업가들의 좋은 생각이 알려질 기회가 많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기업가들이 뉴스에서 경제·산업면보다 사회면에 더욱 많이 등장하는 분위기는 나라 안팎에서 '한국 기업가들은 문제가 있다'는 식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
이런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서 회장은 셀트리온그룹에서 은퇴한 후 계획을 직접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그는 "원격진료 관련 사업을 해볼 생각으로 얼마 전부터 스터디를 시작했다"며 "원격진료는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가 바라보는 공통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모나코 = 김명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