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가계대출 문턱을 조금씩 낮추는 것은 금융당국이 4분기 전세자금 대출을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대출 증가율 관리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 한 시중은행의 지난 19일 기준 가계대출 현황을 살펴보면, 작년 말과 비교해 올해 증가율은 5%대 초반이지만 10월과 11월 전세대출을 제외하면 4%대 중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금융당국이 정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는 6%대로 1~2%포인트 여유가 생긴다.
일각에서는 최근 몇 달간 가계대출을 조이기 위해 은행들이 일제히 깎은 우대금리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은행들은 우대금리를 축소해 최종 대출금리를 높이는 식으로 대출 수요를 억제해왔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23일 "금감원이 은행의 예대금리(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사이 차이가 굉장히 크게 벌어져 있어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문제가 있다면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시중은행들은 우대금리를 되살리는 방안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은행 관계자는 "우대금리까지 되살리면 대출 수요가 다시 몰릴 가능성이 있다"며 "당국이 올해와 내년 대출 총량 관리를 강조하고 있고 이에 따른 개별 은행 페널티까지 예고한 상황이라 금리를 조정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까지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대출 재개 움직임이 전 은행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전세대출이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서 제외됨에 따라 마련된 추가 재원을 실수요자에게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기존에 도입했던 대출 규제 조치를 완화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25일부터 전세대출 상환 선택지에서 일시상환 방식을 빼고 최소 원금 5% 이상을 분할상환하도록 의무화한 바 있다. 통상 전세입자들은 대출 기간 중에 이자만 내다가 대출 만기에 전세금을 받아 원금을 한꺼번에 상환하는 일시상환 방식으로 전세금을 빌려왔는데 국민은행이 분할상환을 의무화하면서 매월 갚아야 하는 원리금 부담이 커졌다. 하지만 지난 22일부터 국민은행이 전세대출을 받을 때 일시상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내부 지침을 바꾸면서 전세입자들의 부담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은 신규 분양주택 입주 시 잔금대출 담보 기준으로 'KB 시세'와 '감정가액'(KB 시세가 없는 경우)을 순차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지난 9월 29일 국민은행은 잔금대출 담보 기준을 기존 'KB 시세 또는 감정가액'에서 '분양가격, KB 시세, 감정가액 중 최저 금액'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신규 분양주택 입주를 앞둔 사람들이 시세보다 한참 낮은 분양가를 기준으로 대출을 받게 돼 대출 한도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이제 분양 아파트의 현재 시세가 다시 1차 기준이 되면, 대출자에게는 잔금대출 한도에 여유가 생길 전망이다.
농협은행도 다음달부터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8월 농협은행은 작년 말 대비 가계대출 증가율이 7%
하나은행도 이날 오후 6시부터 신용대출과 비대면 대출을 다시 취급하기로 했다. 다음달 1일부터는 주택·상가·오피스텔·토지 등 부동산 구입 자금 대출도 전면 재개한다.
[김혜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