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따르면 이들 5대 시중은행에서 13일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121조488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에 비해 9영업일간 1조2892억원 늘었다. 지난달 2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던 신용대출 증가 폭은 이달에도 2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주담대를 조이는 내용이 담긴 6·17 부동산 대책이 반영된 7월 이후 이달 13일까지는 3조9612억원 늘어났다. 이 대책 이전인 5월에는 1조689억원 증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대책 이후 평상시보다 2배 많은 매월 2조원씩 신용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주담대는 정부 규제 등으로 대출 요건이 까다롭지만 신용대출은 별다른 조건이 붙지 않고 금리도 낮아진 데다 비대면으로 쉽게 받을 수 있어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고 전했다.
신용대출을 받으려는 고객들은 은행에 가서 대출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주택 구입 자금, 전세자금 반환용, 생계자금, 투자자금 등 가운데 하나로 대출용도를 기재하게 돼 있지만 일단 대출이 나가고 나면 은행에서 실제 용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은행 측은 설명한다.
저금리로 신용대출 금리가 낮아진 점도 대출 증가 요인으로 지목된다.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 수준은 14일 현재 연 1.74∼3.76%다. 주담대(연 2.03∼4.27%)보다 낮은 이례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지금처럼 대기업 직장인(신용 1~2등급 기준) 대부분이 신용대출을 신청했을 때 주담대보다 낮은 금리로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신용대출 이자 부담이 이처럼 낮아진 것은 기준금리 인하 반영 속도가 빠르고, 인건비 부담이 작은 인터넷은행들이 공격적으로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출금리 결정 구조상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한 금리 하락 속도가 신용대출 쪽이 더 빠르다. 신용대출 기준금리인 금융채 6개월물 금리는 1년 전보다 0.719%포인트 떨어졌지만 주담대 등에 사용되는 금융채 5년물은 같은 기간 0.04%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또 시중은행 주담대는 담보 설정 비용 등 고정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신용대출처럼 금리를 낮추기 어려운 구조다.
비대면을 무기로 한 인터넷은행들이 신용대출 시장에 뛰어든 것도 전세 신용대출 금리 인하를 촉발했다는 분석이다. 카뱅 신용대출 금리는 연 2%대로 시중은행과 비슷하지만 '10분 내 통장 입금'이라는 빠른 속도가 장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중은행도 비대면으로 받게 되면 속도에서는 밀리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젊은 층이 카카오톡을 통해 카뱅 플랫폼에 친숙하다는 점이 최근 부각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 직원들조차 카뱅 신용대출을 많이 받을 정도로 인기"라고 귀띔했다. 신용대출은 '영혼까지 끌어당겨 집을 구한다'는 '영끌'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40%까지 내리는 등 수차례 이어진 정부의 부동산 대책 속에서 주택 매매·전세 수요자들은 주택담보대출만으로는 모자라는
신용대출로 인한 '머니 무브'가 부동산시장에 집중돼 집값이 계속 오르면 정부가 은행권 신용대출도 조일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