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해 준비해 오던 국민연금이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제안권은 배당, 이사 선임·해임 등 기업 경영과 관련한 주요 사항에 대해 주주가 직접 주주총회 안건으로 제안하는 것으로, 적극적 주주권 행사의 핵심 수단이다.
5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직후 조흥식 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기자들 질문에 "전문위원회를 만들고 있어서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달 국민연금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기금운용위원회 전문위원회 중 하나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상근 전문위원 3명과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되는데 아직 인적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수탁자책임위원회 구성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이라 그동안 관심 대상이었던 국민연금의 올해 주주총회 주주제안은 물리적으로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적극적 주주권 행사 중 하나인 주주제안은 주주총회가 열리기 6주 전에 이사회에 통보해야 한다. 대부분 주주총회가 3월 말에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이 2월 중순까지 주주제안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현재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이달 말까지만 구성될 수 있다면 의결권 행사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표 대결에서 캐스팅보터로서 국민연금 표심이 여전히 중요한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방침이 적어도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주주권과 의결권 행사 방향을 정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아직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상태라 의사 결정 주체가 공석인 상태기 때문이다.
작년 2월 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한진칼에 대한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횡령 죄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으로 정관 변경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재작년부터 한진그룹 일가의 일탈이 사회적 논란이 되자 3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해 국민연금은 지난해 11월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내놨으며, 올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5%룰'도 완화돼 보다 용이하게 주주권 행사에 나설 수 있는 토대까지 마련됐다. 올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커진 영향력에 관심이 쏠렸지만 막상 내부적인 조직과 인적 구성을 완비하지 못해 의결권과 주주권 행사가 막힌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의결권 행사는 수탁자책임위가 결정하거나 수탁자책임위의 검토를 토대로 기금운용위가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1기 수탁자책임위 임기는 올해 9월 말이지만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상근 전문위원 3명과 비상근 민간 전문가 6명으로 재편되고 있어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다. 한진칼 올해 주총이 3월 24일로 예상되는데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이사회에 통보할 수 있는 마감일이 주총 6주 전이기 때문에 2월 10일께에는 주주제안을 해야 한다.
다만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오너가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목소리가 높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엔 여전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예정대로 이달 말까지 수탁자책임전문위가 구성돼 위원들이 빠르게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한진칼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가능하다. 한진칼에 대해선 국민연금이 지분 4.11%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올해 주총에서 조원태 대표이사 임기가 만료돼 재선임을 받아야 하는데 최근 조원태 대표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표 대결이 가시화하면서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주목받고 있다. 5일 기금운용위 회의장에서도 시민단체들은 '사익편취 이사 연임방지 주주제안 의결하라'는 표어를 들고 국민연금에 대해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조흥식 기금운용위 부위원장도 이날 기금운용위가 끝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진칼 경영권 분쟁은 관심이 큰 사안이므로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한다"고 말해 사실상 국민연금 측 결정에 국민 여론을 고려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지만 기업에 사회적 책임도 있다"며 "국민이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받아들여주고, 기업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이 장기적인 기업 가치 향상을 통해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결정해야 하는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