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격의 PEF ◆
11일 한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실탄은 충분히 장전했는데 솔직히 노리고 싶은 사냥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M&A 시장에 유동성이 넘칠 내년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PEF의 신규 모집 펀드 규모만 15조원이 넘고, 주요 기관투자가의 자금 역시 PEF로 몰리면서 '시장의 소화력'을 우려해 나오지 않았던 구조조정 매물이 내년에는 시장에 흘러나올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대기업들이 계열사나 사업부를 매각하는 거래가 빈번할 전망이다. 우선 공정거래를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뚜렷하고 더구나 내년에는 총선이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 문제로 지적을 받아온 일부 기업은 이러한 문제 해결 차원에서 사업 부문을 떼어내거나 계열사를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또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자 하는 대기업 내부 수요도 상당해 유동성이 넘치는 시장의 기회를 활용하려는 곳도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시장 참여자들은 대기업으로 지정된 60개 그룹 중 롯데와 CJ와 관련한 딜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PEF 관계자는 "한국에서 활약 중인 외국계의 드라이파우더(소진 가능한 펀드의 유휴 자금)까지 고려하면 내년은 2004년 PEF 시장이 태동한 이후 유동성이 가장 넘치는 시기라 봐도 무방할 것"이라며 "다만 비싼 값어치를 지불하고 살 만한 매물이 국내에서 나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미 국내 M&A 시장에서 대형 매물은 대부분 국내외 사모펀드들이 주도하고 있다. 11일 현재 레이더M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외 PEF가 사들인 1000억원 이상의 매물은 총 28건이었다. 거래 규모만 따지면 13조915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MBK파트너스·우리은행 컨소시엄이 인수한 롯데카드 지분 가격이 1조3811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IMM프라이빗에쿼티(PE)와 블랙스톤이 사들인 린데코리아와 지오영의 경영권 거래도 1조원을 뛰어넘었다. 연말까지 진행되고 있는 거래 역시 PEF의 독무대다. 지난달 새 주인이 정해진 SKC코오롱PI 본입찰 과정엔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글랜우드PE 등 국내 대형사들만 참여했다. LG그룹에서 시스템통합(SI) 업무를 담당하는 LG CNS 소수지분 인수 대상도 맥쿼리PE로 확정됐다. 당시 맥쿼리와 막판까지 경쟁을 펼친 원매자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였다.
이 밖에 LG그룹의 서브원(어피너티PE), 롯데손해보험(JKL파트너스), 애큐온캐피탈(베어링PEA) 등이 사모펀드의 품에 안긴 바 있다. 대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 과정에 PEF가 참여하는 게 '흔한 일'이 된 것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사모펀드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며 "
업계에서는 내년에 PEF가 인수 주체로 나서는 사례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연초 이후 국내 대형 PEF들의 펀드 레이징 규모가 무려 15조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김기철 기자 / 강우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