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고위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신탁 상품들에 한해서는 판매를 일정 부분 허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은행·증권사들과 금융당국 간 논의는 어느 상품까지가 고위험에 속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은행 신탁상품의 '공모형' 논란과 관련해 "'공모형 신탁'이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탁 상품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와 1대1로 계약을 맺어 모집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공모보다는 '사모'에 가까운 상품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은행들은 신탁이라고 하더라도 공모형 주가연계증권(ELS) 등 상품을 담았다면 공모형으로 인정해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해왔다. 대부분 주가연계신탁(ELT)에 '공모형 ELS'가 편입되고, 공모에 준하는 투자자보호 제도를 갖추고 있기에 공모에 가깝다는 게 은행들 주장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공모형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탁은 공모와 사모를 구분할 수 없는 만큼 신탁을 공모로 봐야 한다는 이유로 은행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DLF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한 이후 여러 차례 건의사항을 제시해왔다. 은행들은 신탁상품을 두고 공모·사모 논란이 일자 '합동운용신탁' 부활까지 거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합동운용신탁은 다수 위탁자 자산을 한꺼번에 모아 운용하는 방식으로 펀드와 유사한 형태다. 쉽게 말해 '공모 신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운용 방식인 셈이다. 합동운용신탁은 주로 '불특정금전신탁'으로 운영되곤 했는데, 2004년 은행 고유 계정 손실 우려로 판매가 금지된 바 있다. 현재 은행에서 판매되는 신탁은 '특정금전신탁'이다.
은행들은 합동운용신탁이 공모형 신탁에 해당하는 만큼 이를 다시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지만 금융당국이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금융당국은 '고난도 금융투자상품'과 관련해 은행들과 논의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고난도 상품은 파생상품 등이 편입돼 있어 가치평가 방법에 대한 투자자 이해가 어렵고, 최대 원금 손실률이 20~30% 이상인 상품을 말한다.
신탁이 사모 상품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원금 손실률을 낮출 수 있다면 판매 중단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일정 수준으로 투자자 보호장치가 마련돼 있다면 판매가 허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신탁에 채권·ELS 등을 일정 부분 편입해 원금 손실 가능성을 줄인다면 은행 판매가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부분보장형 상품에 대한 판매 가능성 역시 거론된다. 이 경우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해 신탁을 선택하는 투자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LS로 얻는 수익률이 연 4%라고 가정하면 부분보장형은 수익률이 연 2~2.5% 안팎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예탁결제원 발행 통계에 따르면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올해 들어 11월까지 ELT를 50조4000억원어치 판매했다. ELT 은행 수수료는 대략 1% 수준으로 이들 은행이 올해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만 약 504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이자이익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수수료 수익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면
금융당국은 조만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보다 구체화된 정의를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의 정의가 구체화되면 해당 상품에 대해서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강화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주까지는 은행·증권사 등과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승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