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무역전쟁 영향이 덜한 비메모리 중심이지만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투톱'은 글로벌 수요 감소의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선 반도체 가격도 올 4분기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11일 한국거래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등이 포함된 KRX반도체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14% 오른 2121.43으로 마감했다. 이날 KRX 업종별 지수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전날 미국 주식시장에서 반도체주가 상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인텔 퀄컴 등 반도체 기업이 포함된 미국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10일(현지시간) 전 거래일 대비 2.54% 올랐다. 지난달 말과 비교하면 6거래일 만에 9.1% 상승했다. 이달 말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중국 정상이 만나 무역분쟁 관련 협상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또 골드만삭스가 미국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 아날로그디바이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하고, 반도체 경기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수정한 것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전쟁이 완화될 경우 곧바로 수혜를 입는 업종이 반도체"라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자 미국 반도체 기업 주가가 올랐고, 국내 반도체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대비 이날까지 상승률로 보면 국내 반도체지수는 5.3% 오른 것에 그쳐 필라델피아지수 상승률(9.1%)에 크게 못 미쳤다. 삼성전자도 이달 5.5% 상승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GICS 분류상 반도체에 들어 있지 않다. 이 같은 상승률 차이는 미국과 국내 반도체 기업의 상반된 사업 구조 탓이란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매출 기준 전 세계 반도체 1위는 인텔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텔의 1분기 매출은 157억8800만달러로 전년 동기(158억3700만달러)보다 0.3%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인텔의 메모리 매출 비중은 전체 6% 수준이어서 메모리 불황을 피해간 셈이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은 같은 기간 각각 34.6%, 26.3%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D램 반도체는 PC, 스마트폰 등 일반 소비와 관련돼 무역전쟁 여파가 상대적으로 크다"며 "다품종 소량생산이 중심인 비메모리 분야는 수익성도 높고 시장 상황에 따른 대응도 탄력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선 미·중 무역전쟁의 리스크가 높은 D램 반도체가 올해 내내 고전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이달 들어 무역전쟁에 대해 미국 정부의 다소 완화된 입장이 나왔지만 반도체 수요를 돌리기엔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올 4분기에도 D램 반도체 가격이 하락해 고점 대비 60% 이상 떨어질 것이란 예상까지 나왔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PC용 D램 가격은 올 3분기에는 작년 동기 대비 19%, 4분기에는 11% 하락하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둔화가 D램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에선 내년 초까지 반도체 부진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휴대폰 사업에서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지만 전체 영업이익의 75%가량을 차지하는 반도체 사업의 부진 탓에 실적 턴어라운드가 지연될 것이란 예상이다.
[문일호 기자 / 정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