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일임형 ISA 계좌 수익률이 마이너스일 경우 은행이 받는 일임보수(수수료)를 면제하는 방향으로 상품 약관을 수정하기로 했다. 개정 작업이 끝나는 대로 금융투자협회 승인을 거쳐 오는 10월부터 적용에 들어갈 계획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약관을 고치는 것인 만큼 금투협 승인도 문제없이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승인절차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신한은행은 신규 가입계좌뿐 아니라 기존 고객이 손실을 봤을 때도 약관을 소급 적용해 해당 고객이 10월에 내야 하는 3분기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일임형ISA를 운용하는 대가로 신한은행은 매일 계산하는 자산평가금액(투자원금+수익)에 0.1~1% 수수료율(상품별로 상이)을 적용해 산출한 수수료를 분기별로 모아 해당 분기가 끝난 바로 다음달(1·4·7·10월) 첫 영업일에 징수하고 있다. 수익도 손해도 나지 않아 '본전치기'를 한 일임형 ISA 계좌 가입자도 손실을 본 고객과 마찬가지로 취급해 수수료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투자로 생긴 이득도 없고 손실도 없어 원금은 지켰지만 일임보수를 떼면 최종 평가금액이 투자원금에 미달하게 돼 손실을 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한은행이 시중은행뿐 아니라 증권사와 보험사를 통틀어 최초로 '무(無) 수익 무(無) 수수료'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원금손실을 보거나 수익률이 바닥권인데도 꼬박꼬박 수수료를 받아챙기는 ISA 운용사 행태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비자 불만을 무마하는 한편 내년부터 비과세혜택을 확 늘린 ISA 신상품 출시에 맞춰 일찌감치 시장을 선점하려는 목적도 담겨 있다. 이달 초 정부가 내놓은 세법 개정안을 보면 내년 1월부터 현재 최대 250만원인 ISA 비과세한도가 500만원으로 확대되고 퇴직이나 폐업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했던 중도인출도 자유롭게 허용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기존 가입 계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큼 업계에서는 신규 가입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기존 계좌 보유자도 ISA에 추가로 더 돈을 집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단순히 예대마진으로 수익을 얻는 데서 벗어나 수익원 다양화 차원에서 비이자 수익 확대에 올인하고 있는 시중은행 입장에서 일임형ISA는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 아직까지 절대적인 시장규모가 크지 않지만 내년부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ISA 상품이 출시되는 데다 고객친화적인 방향으로 수수료체계까지 개편되면 가입계좌가 가파르게 늘어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현행법상 일임형ISA는 은행에 허용된 유일한 자산운용 일임업무다. 투자 종목을 일일이 투자자가 지정하는 등 은행이 단순히 판매창구 역할만 하는 신탁형ISA와 달리 일임형은 포트폴리오 구성부터 리밸런싱(자산 배분), 투자 결정까지 모두 은행 스스로 할 수 있다. 국내외 채권 혹은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일임형 ISA는 투자수익률이 최고 연 8%에 달해 리스크를 지더라도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에게 적합한 상품이다. 이 때문에 1인당 평균 가입금액은 일임형이 신탁형보다 5배 더 많다.
일임형ISA 수수료 면제결정은 지난 7월 금융위원회의 법령해석 덕분에 빨라졌다. 변경예정인 약관을 미리 공지하면 별도로 투자일임계약서를 다시 작성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으로 기존에 가입한 고객에게도 새 수수료 체계를 일괄적으로 소급해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줬다.
신한은행이 손실을 본 ISA 계좌에 대해 수수료를 물리지 않겠다고 치고 나오면서 수수료 체계 개편은 불가피할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에 이어 ISA를 취급하는 다른 금융사들도 수수료를 깎거나 아예 받지 않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KB국민은행이 원금손실 ISA에 대한 무수수료 정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등 ISA 계좌 수수료 시장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업계에서는 신한은행의 이번 수수료 프리 정책이 국내 금융사들이 ISA뿐 아니라 펀드 등 투자상품 전반에 대해 수익이 나는 만큼 수수료를 받는 제도를 도입하는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ISA 외 일부 상품에 대해 수수료를 투자수익과 연계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6개월 안에 사전에 정한 목표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기존보다 저렴한 수수료를 받는 신탁 상품을 판매했고 우리은행도 6개월간 수익률 3%가 안 나오면 연 1% 후취 수수료 가운데 절반만 받는 고객성과연동신탁을 취급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결과와 상관없이 똑같은 비율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점차 치열해지는 금융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졌다"고 진단했다.
■ <용어 설명>
▷ ISA : 연간 2000만원, 총 1억원까지 주식과 펀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