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가라는데 주변에서 돈 벌었다는 사람을 못 봤어요."
펀드 투자자 김일현 씨(47)는 요즈음 매일처럼 증시가 끝나는 오후 3시 30분이 되면 스마트폰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3년 전 자신이 가입한 모 자산운용사의 '성장중소형·가치포커스' 펀드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인데 코스피는 연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김씨 입장에서 더 기가 막힌 것은 코스피가 6년 만에 박스권을 돌파한 지난 4일 이 펀드의 수익률은 -12.04%로 전주보다 오히려 0.8%포인트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코스피가 사상 첫 230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코스피는 8일 전 거래일보다 51.52(2.30%) 오른 2292.76으로 장을 마감했다. 올 들어 가장 큰 상승폭이고, 2015년 9월 9일 이후 1년8개월래 가장 큰 증가폭이다. 외국인투자자 주도로 기관까지 순매수에 동참하면서 대장주 삼성전자가 3.3% 올랐다. 이날 하루 동안 외국인은 5400억원 넘게 순매수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가 행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개미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 "상승장에 한몫 잡았다"는 대박 스토리보다는 "지수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며 한숨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가 하락을 바라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주식 투자자 문국인 씨(54)는 지난해 회사를 퇴직하면서 받은 목돈으로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가 후회하고 있다. 문씨는 "평소 알고 지냈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가 국내 주식은 벌써 몇 년째 박스권이니 미국 4차 산업혁명 관련 주식에 투자하라고 하더라"며 "그런데 올 들어 달러는 원화 대비 8%나 약세를 보이면서 환손실도 입었고, 주식은 해외 주식보다 삼성전자가 더 올랐다"고 통탄했다.
한편 이날 개인은 올 들어 가장 큰 규모의 매도세를 보였다. 하루 동안 순매도 규모는 6633억원에 달한다. 연초 이후 지난 4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만도 5조6696억원이다.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전체 규모가 40조원 남짓임을 감안하면 8분의 1이 4개월 새 줄어든 셈이다. 학습 효과로 코스피가 오르면 환매하는 개인들은 최근 상승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박현준 한국투자신탁운용 코어운용본부장은 "이 정도 강한 상승장이 나타나면 주변에서 주식해서 돈 벌었다는 사람들 얘기가 들려야 하는데 요즘은 반대로 앓는 소리 하는 사람이 더 많다"며 "오랜 박스권 증시에 익숙했던 개인투자자들이 장이 오르자 펀드는 환매하고, 주식도 이미 팔아 주가가 오르면 오히려 괴로워하는 것
특히 대형주 주도 장세에서 중소형주 위주로 보유한 개인투자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다. 전용배 프랭클린템플턴 대표는 "개인투자자들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걸 알면서도 주가가 오르면 주로 대형주보다는 과거 낙폭이 컸던 중소형주 위주로 사고 있다"고 전했다.
[한예경 기자 / 김효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